매일신문

매일춘추-­영원의 알레고리

하찮은 사물에도 영속성을 부여하는 게 예술품입니다.

또한 시대가 변화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삶이 정신적인 윤택을 지향한다고 예술품은 말해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직껏 나는 예술작품이 영원하다는 설정은 믿지 않는 편입니다.

의식을 탕진한 찌꺼기가 작품일진대 갈등이 씻기지 않아 그림 그리기가 신통치 않습니다.

또한 그 그림이 세상에 떠다니며 유약한 사람들의 심장을 다칠까 버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몇 해 전, 비가 슬슬 뿌리는 날 친구 셋이 앉았습니다.

그림과는 무관한 그들이지만 감수성이 칼날같아 문학이니 영화니 화제는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잔이 몇 순배 돌고 진지함과 혼탁이 어긋날쯤, 불쑥 나는 내 작품을 '불지를 것' 운운한 적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불쑥은 아니고, 지독한 탐닉이 없었고, 건조한 노동의 반복이고, 그러니 회의만 키워 가던 때였지요. 그래서 작품을 모조리 소각해 버리고 싶었던 게지요.

친구는 서슴없이 그러더군요. "황칠한 건 알겠지만 아까우니 몇 개 달라" 고 말하면서 그림재료까지 들먹이며 빈정거렸습니다.

"먹물 꽤나 먹은 놈 치고는 낡은 소리다.

" 농짙은 소리였지만 보편의 정서 같아 손등으로 입가를 쩝쩝 훔치고는 다른 화제로 흘러 버렸지요.

이쯤 되니 어느 산문집에서 동냥한 영원의 알레고리가 나를 위로합니다.

"'영원히' 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맘에 든다!" 라고요.

새로움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곳이 미술동네지요. 그래서 빠르거나 번뜩이는 속도전이 현란할 정도입니다.

그 현란한 속도전을 가만히 읽어보면 영원에 대한 강박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권기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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