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위의 삶-② 티베트 라사의 조캉사원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검은 산을 선회하던 비행기가 강변을 따라 하강하고 사람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서둘러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긴다.

드디어 티베트!

기압의 차이를 등에 맨 배낭의 무게로 느끼며 대합실을 나서는 순간, 여과되지 않은 하늘과 햇살은 푸르름과 맑음을 넘어 눈을 찌른다.

순수하다는 것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것은 뭔가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햇살과 하늘빛에는 한겨울 내내 얼었던 얼음이 깨어질 때, 얼핏 보이는 날카로움과 섬뜩한 차가움이 배어있고 길들여진 인간의 나약함은 길들여지지 않은 것에 감추고 숨어 버리는 것으로 익숙하다.

마중 나온 여행사의 직원들이 가져 온 환영과 무병장수의 뜻을 지닌 하얀 비단 천, 까닥(哈達)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단체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라사(拉薩)로 향한다.

길 왼쪽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검은 몸으로 서 있는 황량한 산자락과 오른 쪽 라사 강 주위로 자라고 있는 초록빛 보리와 노란 유채꽃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굴레처럼 보인다.

◇ 벼랑에 새겨진 마애불상 황금빛 찬연

'바람의 말'이라는 그 뜻처럼 길목마다 바람에 나부끼는 수많은 룽다가 눈에 익을 무렵 거대한 마애불상을 만난다.

라사 인근 벼랑에 새겨진 마애불상은 황금빛으로 찬연하고 주황 색 가사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푸른색의 바리를 들고 앉아 있다.

부처의 얼굴이 다르지 않았다면 우리 불상이라고 착각할 만큼 채색이 닮아 있다.

휴대전화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 계속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던 중국인 운전기사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공안(公安·경찰)들의 검문을 받는다.

여행허가서와 여권을 받아든 공안은 대뜸 운전기사에게 가이드 없이 이동하는 것을 트집잡는다.

안절부절 못하던 기사는 다시 휴대전화를 걸고, 공안들은 차량을 대여해준 책임자와 통화하고서도 삼십분 이상 무작정 차를 세워두다가 겨우 통과를 허락한다.

기사는 출발을 하면서 눈을 찡긋거리며 손가락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티베트와의 첫 만남이 말로만 듣던 중국의 그늘(관료들의 부정부패)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군인들이 지키는 다리를 지나자 포장된 넓은 도로 가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라사는 얼굴을 드러낸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 고행의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들의 이마에 피멍이 만든 굳은 살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엄숙함으로 와닿아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숙소인 야크 호텔에 짐을 풀고 티벳 제일의 성지인 조캉 사원(大昭寺)을 보러 나선다.

티베트어로 '부처의 집'이란 뜻을 지닌 조캉 사원에는 7세기 중엽 당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시집올 때 가져온 불상과 함께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 캄포(松贊干布:Songtsen Gampo.618~649) 왕과 문성공주의 상이 모셔져 있다.

온통 불심으로 가득한 곳이다.

성지 순례의 마지막 여정인 조캉 사원을 맴도는 순례자들의 행렬. 생에서의 업(業)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한 번 돌면 이생에서의 업을 소멸시킬 수 있고 세 번을 돌면 해탈을 할 수 있다는 '코라'는 끝없이 이어지고. 오체투지를 하는 이들의 옷은 마치 그 순례의 깊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그 어떠한 것보다도 아름다워 보인다.

◇ 원 한바퀴 돌면 이생의 업 소멸

시계 방향으로 조캉 사원 주위를 도는 코라 행렬을 따라 가다가 70위안(元)의 입장료를 내고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1층은 글을 모르는 불자들을 위해 경을 새겨 손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 마니차(法輪:prayer wheel)로 빼곡하다.

그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 반메홈'을 외는 이들의 소리는 낯선 여행자에겐 깊은 미로 속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실제로 정형화된 우리의 사찰과 인도의 아잔타에서 보았던 적막하리만큼 고요한 석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은 티베트 불교를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함으로 밀어 넣고 있다.

묘한 냄새를 풍기며 타오르는 야크 버터기름 등불 사이로 보이는 석가모니불은 1천년이 넘는 그 세월을 잊은 듯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고 너무나 대조적인 것은 그 앞에서 끊임없이 등불을 밝히며 오체투지를 하는 이들의 남루한 옷차림이다.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나섰던 석가모니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척박한 땅에서 가장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구나 나라를 빼앗기고도 자비와 평화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저들을 보게 될 때.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 속가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고개를 내젓는 여행자의 불온이 갖는 의문은 꼬리를 물고, 나무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간다.

승방처럼 보이는 문 앞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우리네 승방의 댓돌에 놓인 고무신 마냥 반갑다.

빛으로 가득 찬 2층은 고요해 여행자들의 기웃거림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다.

◇ 3층 옥상에 서면 포탈라 궁이 한 눈에

포탈라 궁이 한 눈에 들어오는 3층 옥상으로 오르자 지붕을 수리하는 인부들의 청아한 노래소리가 들린다.

한 여자가 선소리를 하면 나머지 여자들이 후렴을 하면서 나무막대기로 박자를 맞추며 지붕을 다지고 있다.

비록 무엇을 노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가르는 노래는 노동요를 넘어 성가처럼 들린다.

옥상 한 편에는 승려들이 음료수와 기념품을 팔고 있다.

흥정을 하는 붉은 가사에서 속세의 번잡함을 보는 것은 아마도 승려들의 엄격한 계율만을 보아온 여행자의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혼돈스러웠다.

아마도 티베트인들의 불심은 승려이든, 속인이든 누가 먼저인가를 물을 필요도 없이 모두의 인연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원 밖으로 나온다.

출입구에서 폐쇄된 정문까지는 불과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구걸을 하는 아이들, 기념품을 팔고사는 사람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 손에 든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를 도는 사람들로 넘쳐나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이 든다.

조캉 사원의 정문은 그야말로 성지의 요체다.

성지 순례의 시작과 끝이 거기에 있다.

제복을 입은 공안은 무엇이 두려운지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고 그가 앉은 자리 옆에는 티베트와 당나라가 조카와 아저씨의 관계를 맺어 화의와 동맹을 맺었다는 기록을 담은 '당-토번 화맹비'가 높은 담에 갇혀 있다.

역사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자주 민족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략하고 그 분명한 역사적 증거를 왜곡하고 담과 창살로 가로 막아 감시해보지만 비록 돌 위에 새겨진 증언이라 할지라도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거리에도 어둠이 앉고 있지만 정작 조캉 사원 앞을 밝히는 수천 개의 등불은 꺼질 줄 모르고 오체투지와 코라의 행렬은 줄어들지 않는다.전태흥·자유기고가사진: 티베트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조캉사원과 일년 내내 순례자들로 북적이는 사원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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