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제한상영관이 4개월 만에 존폐기로에 서게 됐다.
영화 배급의 차질은 물론이고 관객들에게도 외면을 받으면서 경영난에 허덕이게 된 제한상영관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는 것.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를 무삭제로 볼 수 있다'와 '저급 포르노물이 일반에게 여과 없이 공개된다'는 등 끊임없이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제한상영관이 과연 이대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잇따른 폐관 신청
지난 9일 오후 3시쯤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제한상영관 레드시네마(구 해바라기 극장). 최근 '팻걸'이라는 영화로 화제를 불러모았던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지옥의 체험'이 상영되고 있었지만 150석의 객석에는 단 한 명만이 앉아 있었다.
이 극장 최윤달 사장은 "손님이 없어 오늘은 오후 2시가 돼서야 첫 손님이 와서 겨우 영화를 틀었다"며 "요즘은 하루에 관객이 5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개관 후 넉 달 동안 얻은 것은 2천만원의 적자가 전부라고 했다.
레드시네마와 함께 지난 5월14일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제한상영관으로 문을 열었던 인근의 동성아트홀(구 푸른극장)은 아예 예술영화전용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관객이 없어 그동안 전기료도 건지지 못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변경한 것. 영화관 배사흠 대표는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관객이 있었는데 영화를 자주 바꾸지 못하게 되면서 관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술전용관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한상영관 체인 듀크시네마와 배급계약을 맺고 제한상영관으로 허가를 낸 극장은 전국적으로 6곳. 지난달 포항의 한 극장이 문을 닫은 것을 비롯해 안양, 수원, 울산 등 다른 극장들도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문을 닫거나 폐관 절차를 밟고 있다.
◇무엇이 걸림돌인가
제한상영관들이 그동안 가장 힘들어 했던 문제는 영화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이다.
개관 후 넉달 동안 3개의 영화로 극장을 운영해 왔다.
심지어 지난 7월 초 스크린에 걸었던 '지옥의 체험'은 아직까지 영화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 레드시네마 최윤달 사장은 "요즘 극장에서 하는 일은 영화 상영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언제 바뀌는지 물어보는 전화를 받는 일"이라며, "안 그래도 관객이 없는데 영화도 새로운 것이 안 나와 속이 터질 지경"이라고 했다.
지난 5월 듀크시네마가 제한상영관 체인을 모집하면서 1년에 18~25편 정도의 영화를 배급할 것이라고 밝힌 계획과는 동떨어진 것. 오히려 듀크시네마는 얼마 전 문을 닫고 연락도 끊긴 상태다.
영화인들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영화인은 "가장 큰 장벽이었던 수입추천제가 내년에 폐지된다고 하지만 과연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가 1년에 몇 편이 나올지는 처음부터 의문이었다"며 "특히 예술성이 높으면서 볼 만한 영화는 더 할말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게다가 스크린쿼터제도 걸림돌이다.
제한상영관 역시 1년에 146일의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 규정을 지켜야 하는데, 광고도 할 수 없고 비디오와 DVD 출시가 금지되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만한 영화를 국내 제작사가 선뜻 제작하기는 만무한 것이다.
◇제한상영관 왜 필요한가
지난 2002년 개정 영화진흥법에 제한상영관 설치규정이 신설된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선을 보이게 된 제한상영관은 영화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진흥위원회 김현수 산업지원담당은 "노출이 심하거나 과도한 폭력성으로 인해 그동안 일반대중과는 담을 쌓아야 했던 영화들을 원본 그대로 보고 싶어했던 국내 마니아들이 제한상영관의 등장으로 인해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일반상영관에 초대받지 못해 영화사가 문제가 된 부분을 가위질해 재심의를 받지 않는 한 일반대중과 만날 길이 없는 등 볼권리가 제한돼 왔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길 경우 "사실상 상영금지 조치를 내리는 불합리한 법률적 모순"이라는 비판으로부터 다소 자유스러울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의미다.
지난 1997년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심의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후 7년 만에 법률적으로 불합리한 상황이 해소된 것.
◇대책은 없나
문화관광부 영상진흥과 손용문씨는 "그동안 말썽이 됐던 수입추천제 폐지를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해법을 만들고 있지만 정부도 더 이상의 지원은 힘든 실정"이라고 했다.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하고 있는 영화진흥위 김현수 담당도 "현재 영화진흥법상 제한상영관은 해당 지자체에서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며, "예술영화전용관처럼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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