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쌀과 탱크의 함수관계

"한국, 중국, 일본은 지난 4천년 동안 많은 인구를 부양하면서도 토양손실 없이 영구적으로 벼농사를 지속해왔다.

이제 200년에 불과한데도 토양손실이 심해지는 미국의 고투입 농업방식도 동아시아의 영구적 농업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 이 말은 1911년 미국 학자 킹이 동아시아 3국의 농업을 돌아보고 경이로움으로 쓴 '4천년간의 농민들: 한, 중, 일의 영구농경'이라는 책의 핵심이다.

오늘날 식으로 하자면 에너지와 화학물질을 많이 투입하여 환경을 악화시키는 산업형 농업을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의 농업으로 전환해야만 농업과 환경의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100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그 혜안이 상당히 놀랍다.

하지만 21세기의 문턱을 넘긴 오늘날 상황은 어떻게 된 일인지 도리어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밀과 콩을 완전히 몰아내더니, 이제는 백년도 안된 역사를 가진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이 1만5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쌀까지도 완전히 몰아낼 태세다.

지난 9월 10일은 작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농업의 상품화에 반대하며 자결한 고 이경해씨의 1주기였다.

그리고 지금 전국적으로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분노에 찬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국방부가 무기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쓴 엄청난 혈세가 엉터리 국산화 정책 때문에 재벌기업들로 마구 새어나간다는 뉴스를 보았다.

감성적 민족주의에 호소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현재 식량자급률 25%의 나라가 쌀시장을 개방하면 자급률이 5%로 떨어질 것인데, 그러고도 우리가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을지. 무기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만 신경쓰고 식량 국산화율은 안중에도 없는 우리 정부는 도대체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걸까? 우리 쌀은 과연 탱크만한 안보가치도 없는 걸까?

허남혁· 대구경북환경연구소 연구기획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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