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신문/가상 인터뷰-서자차별 딛고 조선의술 대가로

서자 차별을 딛고 의성(醫聖) 반열에 오른 허준(1546∼1615). 그는 의술을 학문과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특히 임진왜란 이후 만연한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동의보감을 비롯해 많은 의서를 편찬했다.

최근 동의보감을 완성한 그를 만났다.

△전국적으로 역병 창궐이 잦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제 교역의 확대와 도시의 성장에 따른 인구 집중을 들 수 있다.

인구가 밀집됐지만 주거환경은 깨끗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 씻기를 게을리 한다.

또 채소를 잘 씻지 않고 먹는 것도 원인이다.

특히 우물 가까운 곳에 뒷간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사람들은 모두 모여 음식을 먹는다.

역병 창궐은 청결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자 출신으로 보기 드물게 학식이 대단하다.

어떤 비결이 있나.

-우리나라에서 서자들이 겪는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제대로 공부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무과를 통해 입신했으며 부안군수·용천부사 등을 역임했다.

외할아버지 역시 무과 출신의 청주 한씨였다.

서자였지만 양가 모두 양반 집안이었기 때문에 학문적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학문적 토양이 의술을 집대성하는 자양분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당신과 어의(御醫)인 양예수의 만남이 독한 약을 선호하는 풍토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내의원의 양대 기둥은 내 스승인 양예수 어른과 안덕수 어른이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처방을 선호했다.

양예수 어른은 강한 약재를 사용해 빠른 효과를 보는 처방을 선호했고, 안덕수 어른은 강한 약재보다 지속적이고도 꾸준한 효과의 처방을 선호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 효과적인 처방이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양예수 어른께 배웠고, 이에 준한 의학론이 조선 의학의 전통으로 성립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사람들이 계피·부자·인삼 등 강하고 효과가 빠른 약만 찾는 부작용이 나타날까 걱정이 된다.

△당신의 스승이 유의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누가 당신의 진짜 스승인가.

-허허허. 누가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 속에 내 스승이 유의태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유의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유의태는 허준보다 200년 늦은 18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내 스승은 양예수 어른이다.

소설에서는 읽는 재미를 위해 그렇게 설정했던 모양이다.

한편 허준은 의술을 철학 수준으로 끌어올려 동양의학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중국 사람에게는 그들의 땅에서 나는 약초들이 효험이 있듯,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자라나는 약초가 적합하다"며 우리의 몸에 맞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의학론을 펼쳤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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