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학력차 논란 유감

최근 전국 초·중·고교간 학력 격차가 심각하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기자는 며칠 동안 적잖은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보도된 내용보다 더 자세한 자료를 알고 있느냐, 대구·경북의 학교 경쟁력은 어느 정도냐, 지역 내 학력 격차도 심각하지 않느냐 등에 대해 직접 물어오거나 전화, e메일 등으로 궁금증을 풀려는 이들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답이 힘든 것은 자녀의 상급 학교 진학을 앞둔 학부모들이 던져오는 걱정들이다. 대개 "우리 집 근처에서 우수한 중학교, 고교는 어디냐", "우리 애가 중학교 2학년생인데 우수 고교 진학을 위해 이사를 해야 하느냐"는 식이다.

평소에도 흔히 받는 질문이지만 이번 같은 보도가 나가고 나면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2008학년도 새 대학입시 제도 시안이 발표돼 내신성적이나 고교등급제 등에 대한 논란이 떠들썩한 마당이니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속은 더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에 발표된 주제 자체는 대단히 눈길을 끌지만 근거가 되는 자료는 상당히 취약하다. 보도자료 외에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자료를 살펴봐도 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신뢰하기 힘든 내용"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자가 답답해지는 건 이 대목부터다. 이렇게 취약한 자료를 어떻게 보도자료로 내놓을 수 있으며, 언론들은 왜 앞다퉈 선정적인 제목을 뽑아가며 보도하는 것인가. 이리 시끄러운데 정작 모든 통계자료를 거머쥐고 있는 교육부는 언제까지 '서열화로 인한 과열 경쟁'이라는 전가의 보도 하나로 모든 것을 회피할 것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현실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둘러보면 혼란과 걱정에 빠진 학부모들은 벌써 사교육 시장을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간 학력 격차에 대한 논의 자체를 소모적이고 비교육적으로 몰고 가는 데 더없이 좋은 명분이 되고 만다. 학력 격차에 대한 발표나 보도들이 생산적인 결과를 끌어내지 못한 채 일회성 선정주의로 치부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들이 전체 혹은 일부 학생들에 대한 일제평가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학교간 학력 격차 역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하나의 이유가 된다. 숨기고 덮고 할 문제가 아니라 실상과 함께 대책을 내놓고 지혜를 모아야 할 우리 교육의 질곡인 것이다.

학력이 학교 교육의 전부인 것은 아니라고, 점수와 서열만을 중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에 현실 사회는 너무 팍팍하다.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기엔 힘든 구조다. 이 학교는 학력이 다소 취약하지만 이런 부분에선 강점이 있다거나, 학생 특성에 따라 이런 분야를 육성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가야 진정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 대입제도가 추진중인 지금이야말로 이런 논의에 힘을 실을 때다.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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