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부자의 '지갑 풀기'

인기 절정의 한 드라마를 두고 서민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남자 주인공이 멋진 옷을 입고,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무실 비우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애인을 감동시키기 위해 통째 고급 음식점을 빌리는가 하면, 전세 유람선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했다.

드라마가 '있을 법한 허구'라고 하더라도, 그런 호화판 사랑법을 바라보는 서민들은 심정이 어떠했을까. 부러워하면서도 절망감이나 위화감을 느끼게 마련이었을 게다.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

부자들도 그런 시선을 피해 숨으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더구나 부자들은 씀씀이가 더 커지고, 서민들은 더 안 쓰는 소비의 양극화가 지난날의 추세였다면, 이젠 부자들까지 돈을 쓰지 않는 분위기여서 문제가 더 커지는 느낌이다.

◇부자(富者)들의 합법.비합법적 수단을 통한 재산 감추기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올 들어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탈출구가 좁아진 부자들이 '묻지마 채권'이라 불리는 비실명채권으로 쏠리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자금 출처를 묻지 않으므로 웃돈을 주더라도 '남는 장사'여서 증여세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세원 포착이 어려운 고가의 실물자산 투자와 금(金) 사 모으기도 극성이라 한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세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쉬운 예술품으로, 환금성이 좋은 유명 화가의 작품만 찾는 추세인 모양이다.

화랑 관계자들은 박수근 김환기 등의 작품은 최근 1년 새 값이 두 배로 뛰었으나 사려는 행렬이 이어진다는 거다.

부자들의 편법 '틈새 찾기'가 고개 드는 셈이다.

◇지난달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

부자가 돈을 쓰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돈이 돌아가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건 상식이겠지만, 과연 지금 '부자들이 돈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돼 있는가'라는 물음부터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부자들이 돈을 감추려 하지 않도록 가난한 사람들도, 정책도 적대시하지 않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먼저'가 아닐는지....이태수 논설실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