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벤처 정신

'벤처(VENTURE)'란 무엇일까? 사전에는 '모험'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필자가 기자나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의 하나가 "아이리버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그 질문에 대한 한 두 가지의 단답을 원한다. 나름대로 질문을 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답은 준비해 두고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반문해 본다.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감추어 두었던 그들 나름대로의 분석 결과들이 고개를 내민다.

어떤 사람들은 파격적인 디자인이라고 하고, 또는 빠른 제품 개발 사이클, 기술력의 차이, 광고와 마케팅 전략 등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끊임없이 이 질문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리버가 최초로 CD MP3를 개발하기 5년 전에 이미 MP3는 상용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리버의 CD MP3가 나오기 1년 반 전에 필립스가 판매하고 있었고 우리와 거의 동시에 소니도 CD MP3를 출시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준으로 산업자원부에 등록되어 있는 MP3업체가 60개가 넘는다.

조금도 선점의 효과를 누릴 수 없는 이러한 후발 조건에서 어떻게 국내 시장의 반을 점유하고 세계시장 1위를 다투고 극심한 경쟁 속에서 수익을 낼 수가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리버에 무언가 남다른 비결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문일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받게 되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 나 자신도 무척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 답은 성공의 요소는 어느 한 두 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필요 조건의 총합이며 거기에 실천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며, 그 실천이야말로 모험정신, 벤처정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난 99년 레인콤이란 작은 엔지니어링 회사로 출발한 지 1년 뒤 필자는 제품 생산으로 전환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회사의 생존을 좌우할 막대한 자금동원도 문제이지만 이 사업이 궁극적으로 벤처형 사업이 아닌 거대 기업과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데서 나의 고민이 컸다.

그리고 또 1년 뒤 매출 560억 원에 순이익 60억 원이란 탄탄한 OEM비즈니스를 포기하고 아이리버라는 독자 브랜드로 전환했고 월드 클라스의 디자인을 위해 미국의 이노디자인을 찾아가고, 파격적인 AS로 화제가 되고 1년에 한 개씩 해외법인망을 구축하며 올해는 브랜드 작업에만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말은 쉽지만 그 하나하나가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아이리버란 브랜드에 진정 무언가 남다른 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 실행(EXECUTION)이라고 하고 싶다.

브랜딩, 서비스의 혁신, 규모화, 글로벌화 등 이러한 교과서적인 개념이 일류로 가는 데 필수 조건이란 것은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항들이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그 실천이 문제이다. 중요함은 알면서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으므로 미루고 만다. 경쟁자는 기다려 주지 않는데 실천하기엔 두려움이 앞선다.

두려움에 주춤하는 순간 이미 더 이상 벤처는 아닌 것이다. 기술이든 마케팅이든 디자인이든 남다름과 최고를 지향하고 그를 위한 모험에 인색하지 않아야만 벤처 정신이 살아있게 된다. 그래서 벤처는 성공 확률은 낮으면서 대신 결과는 큰 것이다.

작년을 기점으로 아이리버는 애플에게 세계시장 1위의 자리를 내주었다. 비록 주력하는 분야가 다르고 플래쉬 MP3분야에서는 아이리버가 여전히 1위를 고수하지만 MP3란 총체적 시장에선 분명 애플이 1위이다. 그래서 나는 애플을 이기기 위한 또 한 번의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벤처인 것이다.

양덕준(레이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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