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근암서원

문경시 점촌동에서 10여km를 달려가다 보면 도로변 산자락에 펼쳐진 산북면 서중리 마을이 나온다. 과거엔 이 마을도 꽤나 번창해 100여 가구 이상이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고작 30여 가구만이 남아 마을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하다.

문경지역에는 서원(書院)이 가은읍 전곡리 소양(瀟陽)서원과 이곳의 근암서원 등 단 2곳뿐인데 근암서원은 오랜 세월 제대로 관심을 받지못한 탓에 현판으로 겨우 서원임을 알아볼 수 있을 뿐 너무나 초라했다. 근암서원 강당이 있는 본채의 경우 25년 전 한 차례 보수를 했는데 청색 시멘트 기와 지붕으로 돼 있어 이미 옛 멋과 정취는 사라진 지 오래인 듯했다.

뒤뜰에서 나뒹굴고 있는 깨진 기왓장들과 마당 한쪽에 놓인 큰 주춧돌만이 그나마 이곳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었을 뿐, 비좁은 서원 강당과 두 칸 방에는 잡다한 농산물과 가재 도구들만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근암서원 뒤뜰 경현사(景賢祠)도 20여평 남짓한 마당에는 온통 가슴 높이까지 자란 잡초가 뒤덮여 있고, 건물은 낡아 곧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서원 입구에서 만난 권칠상(85)옹은 "옛날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지만 원래 서원을 건립할 때 기둥 하나 세우는 데도 장정 수십명이 달라 붙었을 정도로 건물의 규모가 컸다"고 전했다. 권옹은 "서원이 철폐되면서 당시 건물들은 모두 부수어 버려 마당을 파고 기둥 등을 묻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고 했다.

근암서원의 역사를 보면 중종 39년(1544년)에 근암서당으로 창건돼 현종 10년(1669년)에 근암서원으로 개칭했고, 영조 5년(1729년) 명륜당 중수에 이어, 고종 5년(1868년)에는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었다. 이후 아무도 돌보는 사람없이 방치돼 오다가 지난 79년 사림과 후손들이 모여 복원을 결의하고 지난 82년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해 봉안 고유제를 지냈었다.

그러나 이후 서원 관리가 제대로 안돼 현재는 서원 본채 주변에 옛 주춧돌과 구들장 등이 방치돼 있어 어쩌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에게는 씁쓸함을 안겨주고 있다. 문경시청 엄원식 학예사는 "현재 문경 유교문화관에는 근암서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각종 서류와 목판 등 관련자료들이 전시돼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는데 그동안 예산이 없어 보수 및 단장을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문경시 산북지역 주민들은 "현재 근암서원은 골목 안에 위치한 데다 부지 자체도 비좁아 서원 인근에 부지를 확보해 인근 상주나 안동지역 서원들처럼 그 옛날 당당했던 기품과 위용을 되찾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문경지역 최초의 사립교육기관이었던 근암서원은 많은 인물과 덕성이 뛰어난 7현을 배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관계기관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사진 : 근암서원 뒤뜰에 위치한 경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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