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농촌에 사는 친척이 자기는 하는 일마다 왜 돈 안되는 일만 골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친척은 몇 년 전 복숭아 농사를 지어서 살아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농촌으로 내려갔었다. 온 식구가 매달려 산을 개간하고 거기 복숭아묘목을 심을때까지는 현실은 힘들어도 아직은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한국과 칠레 사이에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면서 과수농가의 앞날이 암울해질 거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었다. 친척은 그만 이제 한참 자라서 수확하기 가장 좋은 때가 된 복숭아 나무를 뽑아내 버리고 말았다.
친척은 기왕에 뽑아낼 것 작년에 뽑지 말고 올해 뽑았으면 정부에서 보상금이라도 받았을 텐데 성급하게 뽑아서 한푼의 보상도 받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척이 한탄하는 이유가 어찌 보상금 몇푼 못 받았다는 이유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농촌 어디를 가도 농민들의 한탄소리를 듣는다.
"이제 농촌에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우리나라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많은 작물들이 우리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작물들이 사라져 간 공통의 이유는 그것들을 심어봤자 돈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돈이 안되는 작물을 심어 봤자 빚만 쌓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나라 농민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곡예하듯, 이제 몇가지 안남은 작물에다 생존을 걸었다.
그러나, 이제 쌀시장을 개방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시장개방된 농산물들의 운명이 그랬듯이 이제 이 나라에서 쌀의 운명 또한 종말을 고할 때가 온건가. 과연 그러한가.
나는 여기서 굳이 복잡한 경제논리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누구 말대로 도시의 서민들은 값싼 외국쌀 먹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옛날에 하사와 병장이라는 가수가 부른 '목화밭'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는 그 어디를 가도, 아무리 심심산골을 가도 목화밭이 없다. 이유는 값싼 외국산 목화가 들어와서 우리 목화시장을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목월의 시 중에 '나그네'가 있다. 시에는 밀밭 사잇길을 나그네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고 있는 정경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나라에서는 밀밭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외국산 밀가루, 그것도 농약 범벅 밀가루들이 '쳐들어오고' 난 뒤부터 그리 되었다. 지금은, 우리밀을 살리자는 운동에 힘입어 특정지역에서 소량이 생산될 뿐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풍경이지 않을 수 없다. 밀밭뿐 아니라 농촌의 겨울논에서 보리 보기도 힘들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어찌될 것인가. 목화밭이 사라지고 밀밭이 사라졌듯이, 이제 이 나라 사람들은 황금빛 나락이 넘실거리는 논배미 볼 날도 정녕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황금들녘이란 말은 그야말로 어디 노래나 책에만 나오는 말이 될 것인가.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 돈 안되면 그만이지 뭐가 그리 애달파 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묻고 싶다. 정말 꼭 그래야만 되겠느냐고.
지금 우리 농촌 들녘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모진 여름을 이겨낸 나락들이 실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들녘을 가로질러 도시로 간 자식들이 올 추석에도 고향을 찾아올 것이다. 그 고향의 들녘을 가로질러 갈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 들녘에 나락들이 넘실대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돈을 떠나, 그보다 더 무서운 식량주권의 문제를 떠나 나는 오직 단 한가지만 우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거기 황금 들녘이 있어 아직은 고향이 고향일 수 있는 거라고. 도시의 자식들이 해마다 명절이 되면 어뜬 수를 써서라도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거기 부모와 부모같은 고향의 들녘이 있어서라고.
그러나 지금, 도시로 간 그 부모의 자식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부모의 들녘이 미구에 사라질 운명일 지도 모를 현실에 처해 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고향의 현실에는 그토록 무심하면서 언제까지나 고향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향은 지키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고향일 수가 있지 않겠는가.
공선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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