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9월 17일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59세를 일기로 숨졌다. 1906년 12월 5일 평양의 한 중류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안 선생은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평양 숭실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가담하면서 퇴학당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구니타치(國立) 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웠다.
1932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제 1첼로 주자로 활약하면서 독주회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1935년에는 '한국환상곡'을 작곡해 세계 곳곳에 한국의 얼을 심어주었다. '한국환상곡'에 대한 선생의 애착은 남달라 1939년부터 1948년 사이에만 15회 이상 연주했다.
1936년 독일로 건너간 안 선생은 6년 전 미국에서 적어둔 가사와 기존 선율을 결합해 애국가를 완성했다. 특히 안 선생은 세계 어디에서 연주하더라도 합창 부분의 가사를 한국말로 그대로 부르게 하여 한국의 혼을 세계 만방에 전파했다.
1955년 조국을 떠난 지 25년 만에 귀국하였으나 그를 시기하는 인사들의 모함으로 슬픔을 안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1961년 다시 귀국해 두 차례 국제음악제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조국을 뒤로 한 채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렇게 타국 땅에 묻혔던 안 선생의 유해는 1977년 7월에서야 그가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예술로 조국애를 실천한 한 영혼을 포용하기에 우리의 가슴은 너무나 좁았던가?
▲1787년 미합중국 헌법 제정 ▲1899년 의화단, 기독교도 습격 ▲1945년 조선프로문학동맹 결성 ▲1963년 주자카르타 영국대사관, 데모대에 피습 ▲1980년 니카라과 전 대통령 소모사 암살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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