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폐 개혁, 거론할 時點 아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16일 국회에서 화폐 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 "연구검토 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검토 초기 단계에 와 있다"며 정부의 화폐정책 방향을 밝혔다. 지금 국회에서는 화폐기본법 개정을 놓고 10만원권을 발행하자는 주장과 화폐 단위를 변경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 시점이다. 따라서 정부가 화폐 단위 변경 쪽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은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

우리 경제 사정으로 볼 때 리디노미네이션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다. 당장 조(兆)단위로는 부족해 경(京)단위가 등장해야 할 형편이다. 특히 현행 화폐제도 도입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2천배 이상이나 커졌고 10원 미만은 거래에 사용되지도 않는 현실로 보아 화폐 단위 변경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문제는 화폐 단위 변경으로 경제가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제는 심리다. 지금 한국 경제는 누가 봐도 자신감을 잃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렇게 불안심리가 팽배한 시점에서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면 국민을 자칫 '심리적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정책의 당위성이 높다 하더라도 '초가 삼간 태우는'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도 화폐 단위를 바꾸는 과정에서 물가가 올라갈 수도 있고, 자산가치에 대한 상실감과 같은 심리적.정서적 거부감 등 부작용을 시인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하니 앞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다소 불편하다는 이유로 화폐 개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적 업적' 쯤으로 생각하고 졸속 추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지금은 화폐 개혁 시점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 난 후 거론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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