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주고 버리는 생활

늦은 밤 귀가 길에 아파트 뜨락에 제법 붉게 익어가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10여년 동안 이곳에 살아오면서 무심코 지내온 세월이었다.<

이 찌든 매연과 소음, 혼탁한 도시 한가운데서 이토록 탐스런 열매를 볼 수 있다니.... 너무도 신기해서 자꾸만 쳐다보노라니 거뭇한 밤 하늘엔 W자도 선명하게 카시오페이아 성좌가 검은 감잎 사이로 반짝이고 있지 않는가. '오, 신이여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짓밟기만 한 죄 많은 인간들에게 용서와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아직도 이 거대한 도시에 열매 맺은 나무와 꽃들 그리고 저 빛나는 성좌를 볼 수 있게 해 주시다니....'

길다른 아파트 작은 숲'찌러럭 찌럭 찌럭 찌러럭 쩔쩔쩔쩔...' 돌틈 풀섶에 숨은 미물들의 우짖음이 별빛을 타고 사위어 가 계절을 읊조리며 점차 푸른 빛을 읽고 시들어 가는 플라타너스 잎새와 철 지난 장미, 갓 피어난 황국(黃菊)이 불빛에 어리어 생성과 소멸의 오묘한 조화를 빚어내고 있지 않은가. '오, 아름다워라 허무하여라'지나온 세월 우린 얼마나 깊이 삶을 사색하고 관조하였으며 마음의 텃밭엔 몇 그루의 고귀한 사랑의 나무를 심고 나 이외의 모든 것을 위해 베풀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왔던가.

오늘도 명예와 재물, 그리고 권력 그 탐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는지? 날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생업이 맹목의 밥벌이 수단 외의 그 어떤 높은 이상과 가치를 마음의 바탕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천갈래 만갈래 상념이 긴 회상의 낭하를 돌아오며 지난 날을 되새기게 한다.

인생을 지혜롭고 보람있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지고 만다. 마지막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시인 괴테와 문호 셰익스피어의 명언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득 어느 노 철학자의 열변이 뇌리를 스쳐온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름이 있으면 그 이름에 값하는 실(實)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알맹이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 이름에 해당하는 알맹이를 갖추지 못할 때 우리는 이를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라고 합니다.'

또 그는 지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혜는 인생의 정도(正道)를 바로 알고 가는 방향의 분별력, 가치의 분별력, 모든 행위를 조화롭게 풀어 갈 줄 아는 균형의 감각이다. 이를 키우고 끊임없이 실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지혜는 벽돌처럼 차곡 차곡 쌓인다'고 말했다. 참으로 뜻깊은 말이다.

이 세상에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리 흔치 않다. 지식이 많은 사람을 학자라고 부를 수 있지만 결코 현인(賢人)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현인은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고유명사이다.

아파트 정원석 위에 앉아 엉덩이가 차갑도록 온갖 생각을 다 해보지만 다 공자 앞에 요령 흔든다 할까 지금 가마솥의 팥죽처럼 들끓는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떠하며, 또 지천명의 강을 건너 이순의 둔덕을 오르는 내 삶의 여정은 그 이름값을 하였는가. 자문자답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여지껏 우리는 작은 것을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큰 것들을 잃지는 않았는지, 그저 목구멍에 스물 스물 녹아드는 달콤한 꿀맛에 치아는 썩고 쓴 맛을 분별하는 미각은 병들지 않았는지?

'얻으면 잃게 마련이요 잃어버리면 다시 얻게 되니 득(得)과 실(失)은 기실은 같은 것이다'라고 그 누가 말하지 않던가. 이제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새로운 가치를 조명하고 얻기에 앞서 주고 버리는 연습을 해봄이 어떨까? 지순한 사랑을 주고 과욕을 버리는 연습을.... 분에 넘치는 탐욕의 결과가 어떤지를 우린 늘상 보고 있지 않는가.

정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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