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한일극장 앞에서 만나자~' 라는 약속을 스스럼없이 툭툭 뱉어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이후 - 한일 극장이 하늘로 솟은 이후 - 무척이나 오랜만에 지인들과 '한일극장에서 만나요~' 라는 약속을 하고 지난 수요일(9월 15일) 그곳을 찾았습니다. 배창호 감독의 시사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지요.
지난 7월 말경이었던가 봅니다. 배창호 감독이 개봉관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신 한 기자분이 '시민들의 힘으로 시민이 원하는 영화를 볼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관들만이 버티고 있는 영화시장에서 작고 힘없는 영화들이 갈 곳은 점점 사라져버리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현재는 개봉관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힘을 모아서 일단 시사회를 영화관에서 하고 나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다시 중앙(?)으로 진출하여 개봉관을 잡는다는 '역수출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그 때 이후 개개인의 크고 작은 힘이 모여서 드디어 지난 수요일에 시사회가 대구에서도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역시민단체나 뜻있는 지역기업인의 도움으로 시사회를 열었던 목포와 광주에 이어, 대구 지역민의 힘을 모아 세 번째로 열렸던 시사회였습니다.
시사회가 시작되기 30여분 전부터 시사회장이었던 한일극장 6관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민후원자들부터 추첨을 통해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 곳은 애써 찾은 사람들이 기대를 안고 서성이고 있었고, 개개인의 연줄들을 통해 후원을 한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 서로 소개하거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등 사교장(?)의 분위기까지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분위기 좋았다는 말이죠.
미리미리 입장해서 자리를 잡고 영화를 기다리는 모습이나 퇴근 후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나 모두모두 목마른 사람들의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목마른 자는 스스로 우물을 파야하는 법이니까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는다고 비가 때맞춰 내려주지는 않을테니까요.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배창호 감독의 인사. 사람들은 감독을 따뜻한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화답. 그의 어머니가 아기인 그를 안고 대구에서 열리는 공연이면 공연, 영화면 영화를 다 찾아다녔고, 아마도 그런 토양이 자신을 영화감독의 길을 가게 했을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 영화를 본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었다고 하자, 웃음과 함께 비판은 피해주십사 정중한 부탁을 건넨 이후 그는 자리로 돌아갔고 필름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빈 자리 없이 꽉 찬 객석에서 수백 개의 눈과 귀는 80년대 문예물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작품을 향해 집중되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감독과의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길'이라는 소재에 대한 감독의 관심에 호기심을 보인 학구적인 질문과 영화 상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감독의 의도를 묻는 질문, 배감독의 연기에 대한 평가와 영화에 흐르는 색채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통해 감독과 관객이 소통하는 자리. 그것도 관객들 스스로가 마련한 이 자리는 다른 어느 자리보다 진지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지역에서는 참 드물게 마련되는 이런 자리를 통해 생산자인 감독은 소비자인 관객이 원하는 바를 느꼈을 것이고, 관객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뜻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배창호 감독의 시사회. 그것이 최고의 자리는 아니었을지라도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자리,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능동성이 발현되는 첫 걸음의 자리는 되지 않았을까요?
p.s : 영화감상 이후 펼쳐진 뒷풀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사는 이곳의 문화적 토양에 대한 고민의 구슬들을 풀어내고 다음에 올 방향을 엮어내는 자리가 되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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