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진타오 시대 개막> 제4세대 지도부 부상

"혁명의 물줄기가 명실상부하게 제4세대로

넘어갔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의 19일 사임은 중국의 지도부가 후진타오(

胡錦濤)를 정점으로 한 '혁명 제4세대'로 확실하게 넘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중

국 조야는 바라보고 있다.

장 전 주석이 지난해 3월 후진타오 총서기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도 군사위 주

석을 유지, 어정쩡하게 유지해오던 권력분점 체제가 드디어 교통정리된 것이다.

특히 1949년 공산혁명 성공이후 처음으로 반대파나 지도층에 대한 숙청없이 이

뤄진 '무혈 권력승계'라는 점은 4세대 부상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항일 무장투쟁의 마지막 세대였던 장 주석의 사임은 2차대전 이후 사회주의

중국에서 교육받은 세대로의 완전 세대교체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장 전주석이 오는 2007년까지의 임기 도중 사퇴한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00주년

행사 때 덩의 딸이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권력에 집착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언급할 때 중국내에서는 '장쩌민을 겨냥한 수사'라는 분석이 제기됐었다.

게다가 이번 사임의 배경으로 장 주석의 건강문제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면 더이

상 견딜 수 없는 물리적, 심리적 압력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장쩌민이 다양한 권력유지의 틀을 만들고 자리를 물려줬다고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3세대의 역할종료를 역사

에 고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세대가 전면에 부상했다고는 하지만 그 속사정은 여전히 복잡다기하다. 일단

이날 회의에서 단행된 인사를 보면 표면적으로 매우 소폭임을 알 수 있다.

후 주석이 군사위 주석직을 승계한 것과 쉬차이허우(徐才厚) 인민해방군 총정치

부 주임이 군사위 부주석으로 승진된 것, 그리고 군사위원회 구성을 현재의 8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한 것이 전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장쩌민의 영향력도 표면적으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 보인다. 9명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장 전주석의 오른팔인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을

비롯해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賈慶林)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황쥐(黃菊) 제1부총리 등 '장쩌민의 사람들'은 그대로 포진하고 있다. 이른바

'상하이방'의 건재가 외형적으로는 드러난다.

이 때문에 장쩌민 전 주석이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장쩌민 계열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당초 전문가들은 장 전 주석의 오

른팔인 쩡칭훙 부주석이 군사위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4중전회는 쉬차

이허우를 후 주석의 군사위 주석직 승계로 공석이 된 군사위 부주석직에 불러들였다.

이 점은 한때 4세대의 3인방으로까지 거론됐던 쩡칭훙의 위상변화와 연관돼 여

러 추측을 야기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제 4세대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양

축으로 분리될 것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이른바 '상하이방'(장쩌민 세력의 핵심)과 후진타오 주석의 배경세력인 '칭화방'

(후진타오의 세력바탕. 칭화대학 출신인사) 또는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

년단)의 위상에는 아직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198명의 중앙위원회 위원 중에서 상하이방 출신이 30명이나 되지만 공청단이나

칭화방 인사는 2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주석과 총서기, 군사위주석 등 중국의 권력의 최상층부를 장악한 후

진타오위 강화된 위상과 중국 권력핵심인사들의 겹치는 인맥 등을 감안할 때 상하이

방의 힘이 과연 정쩌민 시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일각에서 몇년내에 상하이방의 힘은 위축되고 '칭화방 시절'이 현실화될 것이라

는 관측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1950년대 이후 차관급 동문만 300명이상을 배출한 칭화대학 동문들이 4세대 중

국의 핵심인맥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상하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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