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책 읽기도 점수로 매기나

2008학년도 대학입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지루하게 교육계를 달굴 모양이다.

내신 위주의 선발 방식 논의가 고교등급제 문제로 번지더니 부실한 공청회에 이어 확정안 발표도 지연될 조짐을 보인다.

한 번 정해지면 몇 년 동안 대학입시 제도뿐만 아니라 초·중·고 교육이 송두리째 뒤바뀔 만큼 중요한 일이니 논의가 무성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관심을 끄는 몇몇 사안들에 함몰돼 나머지가 고스란히 곁가지로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표적인 것이 학생부에 기록된다는 교과별 독서활동이다.

학생 개개인이 교과별로 필요한 책을 읽게 한 뒤 독서량과 내용을 평가해 점수화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두루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독서의 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리란 기대가 깔려 있다.

사실 이 부분은 2008학년도 대입제도 관련 논의에서는 곁가지 취급도 못 받는 듯하다.

모두들 독서는 무조건 권장할 일이고, 이를 입시에 반영한다면 학생들의 책읽기를 진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과연 학생들의 독서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들어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다.

교육부는 학생이 특정 서적을 얼마나 밀도 있게 읽었는지 평가하는 방법으로 내용에 대한 시험을 치르거나, 독후감을 쓰고 교사가 인증하는 방식 등을 언급하고 있다.

가히 탁상공론의 백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만큼 읽어보지도 않은 책의 줄거리를 훤히 꿰고 작품의 배경과 주제, 작가의 의도, 주인공의 특성 등을 달달 외워대는 학생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수십 권의 고전과 명작들을 한두 권의 책에 요약해 파는 나라가 우리 말고 있다는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

" 한 고교 국어과 교사는 "대학입시에 관련되는 순간 책읽기는 학생들에게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읽은 퇴계 이황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주자전서'라는 책을 구하자 한여름인데도 방문을 걸고 일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그 책을 수없이 읽었다.

어느 친구가 건강을 걱정하자 그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 듯 깨달음이 느껴져서 더위를 모르는데 무슨 병이 생기겠는가"라며 웃었다고 한다.

굳이 옛사람의 책읽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독서는 사람의 정신을 살찌우고 깨달음을 넓혀주는 무한한 효능이 있다.

책 속에서 얻는 교양과 지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마저 획일화·계량화하려 드는 것은 그다지 교육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를 평가할 전국의 모든 고교 교사들에게 그만한 여유와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 술 더 떠 초·중학생들의 독서교육 시장이 달아오른다는 기사가 벌써 눈에 띈다.

눈치 빠른 교육사업자들은 벌써 독서활동 기록, 논술·면접 강화 등을 강조하며 걱정 많은 학부모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김재경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