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라진 명절분위기 정치인들 선물 고민

'한숨만 나오네' 추석 연휴를 1주일가량 남겨둔 정치권은 '달라진' 명절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과거 이맘때 쯤이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주변에는 한과 세트나 과일바구니, 고추장.멸치.김 등 지역 특산품 등과 같은 추석 선물을 옮기는 택배업체 직원이나 퀵서비스 맨으로 붐볐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대구지역 한 의원은 "이런 명절'가뭄'은 처음 봤다"며 "추석을 1주일 앞두고 아직 선물 구경을 못해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경북 한 의원도 "선물을 든 정부부처 공무원 수도 몰라보게 줄어들었다"며 "오히려 선물을 든 사람이 주위 시선을 의식해야 할 판"이라며 국회 분위기를 전했다.

경북 의원 한 보좌관은 "16대만 해도 추석과 국감을 끼고 의원 후원회를 열어 재미를 쏠쏠히 봤지만 '아~옛날이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고민은 지역구에 있다.

해마다 지역구 관리차원에서 해 오던 선물을 올해부터 끊기가 마뜩잖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 한 의원은 "안 받으면 그만이지만 안 줄 수는 없어 고민"이라며 "어떻게 해야 할지 거푸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북 의원도 "현금 2억원 굴비 사건에다 100만원을 받아 경질된 농림부차관 사건 이후 집으로 선물을 보내겠다는 전화가 와도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선거기간 외에도 불법 기부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도록 강화된 선거법 규정에 기인하고 있다.

대구 의원 한 보좌관은 "선거법이 바뀌기 전에는 명절마다 지구당의 관리장급 간부들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어 적게는 300여명부터 많게는 1천명 가까이 1만원 안팎의 선물을 보내온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은 이마저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선물 주고받기 분위기가 줄어든 데는 민주노동당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지난주'추석 선물에 관한 당방침'을 마련,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당 한 관계자는 "피감 기관 및 이익집단 등 로비의혹이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 선물을 보내지 말 것을 공지한다"면서 "그럼에도 보내진 선물에 대해서는 모두 목록을 작성,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추석 연휴기간 중 '몸'이나 '입'으로 때우려하는 계획을 잡고 있다.

지역 한 초선 의원은 "명절 미풍양속인데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발품이라도 팔아 선거운동하듯 지역구를 누비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초선 의원은 "몸으로 때운다고 해서 지역구민이 속사정을 알아줄지, 오히려 욕을 더 먹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각 정당의 시도당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집권 여당이지만 현역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열린우리당은 그야말로 조용한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

시도당 상근직원에게는 위원장 명의로 성의 표시가 가능하게 돼 있지만 별로 기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김현근 대구시당 사무처장은 "당원이나 당직자들이 민주당이나 국민회의 시절보다 못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한나라당 대구시당의 김외철 부처장은 "마땅한 방법이 없다.

선물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처장은 "주요 당직자에게 한정적으로 인사말과 인사장 정도만 보낼 것을 검토 중이지만 이것 역시 선거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지 알아볼 생각"이라며 "달리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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