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자들이 행한 핵물질 실험을 놓고 복잡한 핵정치가 전개되고 있다.
인광석에서 천연 우라늄 추출, 금속 우라늄 생산, 우라늄235 분리, 플루토늄 분리 등 1982년에서 2000년에 이르기까지 수행된 실험들은 언젠가는 성취해야 할 핵연료 국산화를 위한 사전단계로 군사적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다.
추출된 핵물질도 극소량이거나 핵무기가 될 만한 순도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실험 후 관련 시설은 폐기되었으며, 지속적인 추출체제를 갖춘 적도 없다.
과학자들로서는 정부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이나 IAEA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외신들은 연일 호들갑을 떨고 있다.
◇ 미국과 북한의 핵정치
미국은 이 문제를 제기한 당사국이지만 공식입장은 한국에 대해 그리 가혹하지 않다.
"적당한 수위"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남한의 대북 접근 속도에 불만을 가진 미국은 개성공단을 통해 민감한 물자들이 북한에 넘어갈 가능성에 대해 민감한 태도를 보이던 중이었다.
현재 국제사회에는 과거 대공산권 수출통제 기구였던 '코콤(COCOM)'의 후신으로 "불량국가"에 이중 용도 물품이 수출되는 것을 막는 '바세나르 체제'가 가동 중이다.
미국은 남북교류도 이 체제 내에서 이루어질 것을 원했고, 이로 인해 한미 간 이견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위험성이 없는 한국의 실험파동이 북핵문제를 가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때문에 미국도 IAEA도 한국의 "절차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자발적 신고와 투명성 노력을 평가한다"는 칭찬을 잊지 않는다.
북한이 한국기업으로부터 화학무기 사린을 제조할 수 있는 사안화나트륨 70t을 태국을 경유하여 수입하려 했다는 보도도 비슷한 배경에서 터져나왔다.
북한의 핵정치는 언제나 기민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및 대북압박 강화 가능성, 농축프로그램 유무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궁, 핵실험 강행 또는 포기를 둘러싼 내부적 고민 등 다양한 걱정거리를 가진 북한으로서는 이번 파동은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호재였다.
북한관리들이 "한국의 실험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6자회담에 임할 수 없다"는 말을 흘리는 것은 지금까지 그들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당연한 것이다.
이 핵정치의 주요 당사국인 한국은 어떻게 해야 옳은가. 한국은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비핵화선언'과 이어서 남북이 서명한 '비핵화공동선언'을 통해 "농축 및 재처리 포기"를 선언한 상태이다.
농축과 재처리는 핵무기 원료인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시설이지만 핵연료 생산 및 폐연료 재활용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시설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는 국제조약은 없다.
한국은 당시"북한의 핵개발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논리 하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비농축 비재처리 정책"을 수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공동선언을 무시하고 핵개발을 지속했으며, 공동선언은 한국만이 홀로 준수하는 "우스꽝스러운 문서"가 되어 버렸다.
◇ 농축-재처리 포기정책 재고할 계기
이제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사고를 해볼 필요가 있다.
"핵무기 포기"를 확실히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대한 통상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19기의 원전이 가동되는 지금에도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다.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핵투명성을 더욱 확고하게 보장하면서 "농축-재처리 포기 정책"을 재고하는 방향선회를 검토해 볼 만하다.
물론, 잘못 낀 첫 단추를 고쳐 끼기 위해서는 여건조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제비확산체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이며, 오기부림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올바른 수순을 밟아 "농축-재처리의 합법성"을 확보한다면, "일회성 실험일 뿐 농축이나 재처리 행위는 아니다"라는 구차한 해명을 하고 다닐 필요도 없어진다.
세계 최첨단의 농축시설과 재처리시설을 갖추고 30t이 넘는 플루토늄까지 비축한 일본의 언론들이 이웃 나라의 사소한 실험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얄미운 일이지만, 그것이 핵정치의 실체이다.
비핵화공동선언을 사문화시키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마저 탈퇴한 북한이 한국의 실험을 시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것이 바로 핵정치인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이런 핵게임에서 뒤지지 않아야 한다.김태우·핵전문가·경기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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