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장아찌 같은…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막는다 했고,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고 했다.

오는둥 마는둥 적게 온다는 뜻인데 이번 가을비는 슬그머니 많이도 내렸다.

한차례 뿌릴 때마다 기온도 선선해지더니 이젠 짧은 팔차림이 한층 썰렁해보인다.

어느덧 9월도 끝자락. 마음은 어느새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부쩍 얇아진 주머니사정 탓에 올 추석경기는 전에없이 얼어붙어 있다고 아우성들이다.

그러기에 추석장을 보는 손길이 자꾸만 오그라들고 멈칫거려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정다운 얼굴들, 그리운 고향산천을 만날 생각에 마음만큼은 모처럼 여유로워진다.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 거기에 보고픈 얼굴들이 있고, 그냥 어린애처럼 푹 안기고 싶은 가슴들이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자명종 소리에 새벽같이 시작되는 하루, 반환점을 알 수 없는 삶의 경주에서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또는 최소한 낙오자의 대열에는 끼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앞으로만 달려가는 우리. 더 높은 자리, 더 큰 명예, 더 많은 연봉, 더 많은 직함이 든 명함을 가지려 아등바등하는 것이 우리네의 모습이다.

머리 아픈 계산과 끝없는 경쟁, 허식에 찌든 우리를 이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은 역시 고향의 품이다.

예천의 외따른 산골을 떠나지 않는, 구순이 다된 한 주막 할머니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기도 놀던 물이 좋다고, 살던 데가 정이 들어서 좋심더." 아프리카 사막의 베두인족을 정부가 아무리 도시의 현대식 아파트에서 살도록 유인해도 얼마 안가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너덜거리는 텐트에서 사는 것도 다 고향의 편안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후면 또다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하루종일 걸리는 고향길, 파김치가 되도록 피곤한 길이지만 해마다 그 여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고향의 흙내, 고향사람들의 푸근한 정 때문이리라.

고향은 마치 장아찌 같다.

장독 속에서 곰삭은 장아찌! 피클처럼 새큼달큼한 맛은 아니지만 밥맛 잃었을 때 오히려 그 짭짤하고 깊은 맛이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게 하듯 그렇게 우리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떠나지 않는 것이 고향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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