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 기자의 영화보기-추석 극장의 추억

어릴 때부터 영화관을 들락거렸다.

그때야 딱히 놀 만한 곳이 없었다.

기껏해야 만화방이었는데, 돈이라도 생기면 동네 삼류극장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돈이 아까워 하루 종일 어둡고 쾨쾨한 그곳에서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고, 나중에는 대사까지 외울 정도였다.

명절 때는 넉넉했던 호주머니를 극장에서 다 털었다.

평소에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고구마 튀긴 것이며, 깨로 돌돌 만 엿을 사먹으면서 영화를 만끽했었다.

추석이 되면 동네 삼류극장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소매치기도 많았고, 입석 좌석 구분이 없어 2시간 꼬박 서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극장 앞에서 데모라도 벌일 일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명절 극장에는 연인들과 친구 사이인 관객이 주류다.

그러나 그때는 멀리서 온 고향 친척이며 아버지와 자식, 심지어 할머니도 모시고 영화관에 갔다.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라고 적힌 포스터만 보더라도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극장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장소였다.

"극장 가본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연애시절에는 뻔질나게 드나들던 영화관도 결혼하고, 애가 생기면 발길을 끊는다.

철야근무에 휴일까지 제대로 못 쉬는 직장이라면 영화를 보러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직장인이라도 영화관은 왠지 낯선 곳이 되어가고 있다.

추석 명절에도 집에서 화투를 치거나 잠자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나가더라도 노래방이 고작이다.

친척끼리 모이더라도 저마다 '좀 쉬었으면', '빨리 끝나고 집에 가야 되는데'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른들이 명절 때 극장에 안 가는 것은 그만큼 갈 만한 곳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영화여서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보는 것이 더 편해졌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영화관이 더 이상 애환의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억을 더듬어 줄 추억의 공간도 아니다.

그 많던 단관은 다 문을 닫았고, 이제는 패스트푸드처럼 낯선 멀티플렉스뿐이다.

반들거리는 극장 바닥, 매표원들의 기계적인 인사, 무슨 무슨 시네마 등으로 바뀐 극장 간판….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카드로 결제하는 편한 세상이지만 그 이면의 '낯섦'은 정말 낯설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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