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패럴림픽과 '경계 없는 인류'

지난 한 주간은 전국적으로 '차별 철폐주간' 행사가 열렸었다.

워낙 기념일도 많고 무슨 주간도 많은지라, 어떤 이들은 '뭐야, 또 그런 것도 생겼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법하다.

말 그대로 차별받는 계층의 사람들이 그 차별을 없애자고 한 주간 내내 뭔가 애쓴 나날이었다.

말 하기는 쉬워도 살아내기에는 서글픔을 넘어 '죽지 못해 산다'는 것.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차별의 현장이다.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사회' 이상적인 이런 사회를 주장한 계층들은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그리고 빈곤(실업) 당사자들이다.

이에 대한 맺힌 이야기는 오늘 생략할 수밖에 없다.

긴긴 한숨처럼 고단한 그 삶을 풀어낸들 짧은 글재주로는 지면만 어지럽힐 뿐이기에.

그렇더라도 모자람을 무릅쓰고 한 가지 꼭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패럴림픽! 아테네 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9월 17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작도 비장하게, 우리 선수단은 비장애인이 11시간 만에 전세기로 도착한 아테네에 24시간이 걸려 도착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전세기를 구할 예산도 부족하고, 그것을 지원할 스폰서도 구하지 못해, 런던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생긴 일이다.

마침 차별철폐 주간의 첫날인 13일(월), 각 계층운동을 하는 단체와 시민들이 모여 '이야기 한마당'을 하는 자리에서 이 기사가 회자되었다.

돈 없으면 불편한 처우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믿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구나. 순간 그런 부끄러움이 엄습했었다.

더 할 말을 잃게 한 것은, 참가한 한 선수가 이 불편함에 분노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 언젠가 폭발할 거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왕창 따서 보여줄 거다.

"

20:80의 사회로 간다! 무슨 영화제목 같은 이 말은, 그러나 영화가 행·불행의 결말을 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과는 반대로, 정말 우리를 불행의 내리막 고속도로에 태우는 현실적 예언이다.

비장애인들이 이 경우 인터뷰를 했다면, '폭발할 거다' 에 이어지는 말이 꼭 '금메달 왕창'은 아니었을 거라는 섬뜩함이 있다.

'경계 없는 인류'를 기치로 한 장애인 올림픽에서, 매 순간 경계를 경험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생사의 경계를 훌륭히 넘어섰을 장한 이들이다.

자기극복을 살고 있는 이들이기에 분노의 정점이 금메달을 통한 '인정받음'으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장애, 비장애를 떠나 자기극복이라는 문제가 그리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은, 첩첩산중으로 다가오는 짊어질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 조금만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해, 진정한 이해자를 만나지 못해, 그리고 구조적으로 닫혀있는 문을 열 수 없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체험적 사례를 알고 있지 않는가. 극복했다는 것은, 그로써 이미 하나의 금메달일 수 있다.

누구나 금메달을 받을 수 없기에 그 값어치가 있고, 이 올림픽에서 비록 메달을 받지 못한 이에게도 우리는 마음의 꽃다발을 전할 수 있다.

문제는, '극복'하지 못한 개인은 버려도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답변인 것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통계적 협박으로, 없는 관심을 일으킬 생각이 나는 없다.

단지 '경계 없는 인류'를 경계하는 20%적 사고방식을 경계할 따름이다.

물론 이 수치가 장애에 대한 지표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 이 시대 우리가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모른 척하는 그 이면에는, 기득권의 체제옹호를 위한 차별재생산에 우리가 짐짓 동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발을 하고자 한다.

아니라고 화내는 그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연금제도 도입, 장애인 교육법 제정,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등등으로 세금을 좀 더 내더라도, 기꺼이 이 생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싸워줄 수 있겠는가?

차별의 내용 속에는 항상 이런 엄청난 사슬고리가 있음이 문득 무서워진다.

송애경(전 포항여성회 회장· 포항남부 자활후견기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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