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함께살기-고관절 장애 이정복씨

"이젠 눈물도 말랐어요"

"불행은 왜 한꺼번에 닥칠까요."

지난 1997년 오른쪽 고관절 수술로 장애판정을 받은 뒤 걷는 것이 불편한 이정복(66.여.서구 원대동)씨는 지난 2일 유일한 재산인 집이 불 타는 날벼락을 맞았다.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30여년 동안 살아온 낡은 한옥이 전소되고 남은 것이라곤 타다 남은 가구 몇 점뿐. 며칠 앞으로 다가선 추석준비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잠시 이웃집에 볼일 보러 갔다 뒤늦게 불이 난 사실을 알았다"는 이씨는 "만약 나라도 집에 있었으면 몽땅 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땅을 쳤다.

화재가 일어난 지 20여일 지났지만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상처는 아직도 이씨 가족을 괴롭히고 있다.

화재로 전 재산을 날리고 현재 수중에 남은 것은 입은 옷과 신발이 전부로 도움받을 만한 친인척조차 없어 불 타버린 집 한쪽 조그만 장독대에 자리 깔고 지내다 이틀전 인근에 겨우 10만원짜리 2평 쪽방을 구해 찬 공기를 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가족 중 몸 성한 사람이 없어 화재 현장을 치우지도 못하고 있다.

이씨 가족에게 불행은 낯설지가 않다.

남편은 20여년 전 공장의 프레스기에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잃은 데다 10여년째 신병을 앓고 있는 외동딸(35) 역시 두달째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게다가 이씨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점점 심해지는 딸의 증세다.

이씨는 "애지중지 키운 딸이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 지금은 병이 심해져서 치료도 제대로 안돼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증세가 심할 때는 부모도 몰라 볼 정도"라며 눈물을 닦았다.

이들 가족의 유일한 재산은 구청과 동사무소에서 지원한 긴급 구호비 60만원이 전부. 딸의 입원비 70만원 조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진 빚만 2천만원. 하지만 동사무소에서 보내온 라면과 쌀 등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들로서는 빚 갚는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다행히 이씨 가족의 딱한 사정을 알고 주위 온정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동사무소는 얼마전 라면 1상자와 쌀 5㎏을 가져다 주었고 최근에는 이웃 도움으로 이부자리와 밥솥 등 가재도구를 장만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웃들이 신경을 써 주어서 정말 고맙다"면서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이번 추석에는 조상님을 어떻게 뵈노…." 목이 멘 이씨의 한숨만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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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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