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꽃무릇' 군락

붉은 융단 깔아놓은 '꽃의 바다'

단풍이 찾아드는 것을 앞두고 고창 선운사 앞뜰엔 벌써 붉은 융단이 깔렸다.

새색시 볼 마냥 싱그럽게 익은 꽃무리들이 새파란 하늘을 맞대고 가을을 살며시 잡아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여느 수채화보다도 화사하게 대자연의 예술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가을은 역시 색깔들의 잔치임에 틀림없다.

실바람에 흐느끼는 붉은 물결이 길손의 마음까지 살랑살랑 흔든다.

가느다란 꽃줄기 위로 여섯 장의 빨간 꽃잎이 한데 모여 말아 올려진 모양새가 무척이나 별나다.

꽃무릇만이 간직한 자태다.

꽃무릇은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풀 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보통 무리지어 자라는 꽃무릇은 9월 초순 뿌리에서 꽃대가 올라온다.

꽃은 백로(白露)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9월 말이면 절정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선운사와 함께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 등이 대표적인 꽃무릇 군락지다.

그 화려함에 감춰져 있지만 꽃무릇은 사실 가련한 꽃이다.

잎과 꽃이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움에 목이 메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기에 사람들은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라 부르기도 한다.

상사화에 얽힌 전설 또한 애틋하다.

먼 옛날 수행에 몰두하던 한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어느날 불공을 드리러 온 속세의 여인에게 한 눈에 반해 버렸고 그 사랑에 시름시름 가슴앓이하다 결국 상사병으로 쓰러졌다.

그 자리에 핀 붉은 꽃이 상사화라고 전해져 온다.

하지만 꽃무릇과 상사화는 엄연히 다른 꽃이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점은 같지만 꽃무릇의 수술이 더 길고 꽃이 피는 시기 또한 다르다.

상사화는 칠석 전후(양력 8월경)에 피고 꽃무릇은 추석을 전후해 백로와 추분 사이(양력 9월 초순~중순)에 핀다.

불가에선 꽃무릇을 '석산(石蒜)'이라고 부른다.

뿌리에 방부 효과가 있어 탱화를 그릴 때 찧어 바르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꽃무릇이 사찰 인근에 많은 이유다.

글·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 안상호기자 shah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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