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지난 여름이었기에 피부에 와 닿는 서늘함이 그 뜨거움의 깊이만큼이나 축복과 감사로 다가오는 이 가을 저녁. 쇼팽을 싣고 이 계절에 또하나의 신선함을 보탠 임동혁 피아노 독주회가 21일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어린 나이에 몇몇 세계적 콩쿠르(부조니, 롱티보 등)를 석권했고 이미 몇 차례 연주회로 친근해진 그의 이번 첫 대구 나들이는 그만큼이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스케르쪼 제2번' , '야상곡 작품 27의 2번' '피아노 소타나 제3번'이란 쇼팽의 진수를 두루 섭렵한 이날 그의 연주는 젊음의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번뜩이는 감성, 섬세한 시적 릴리시즘, 맑고 투명한 음색, 적절한 템포 루바토와 절제된 프레이징, 지나치게 빠르지 않은 중용의 템포, 레가토를 살려 칸타빌레적으로 노래하는 가녀린 선율미는 그 또래 젊은이에게서 흔히 보이는 테크니션이란 선입견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특히 차분한 여유와 냉정한 안정감으로, 외향적 제스처를 배제한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는 얄미울 정도로 젊은이답지가 않았다.
향후 곡의 성격에 따른 다양한 색채미('장송행진곡'에서의 어둡고 중후한 음색 등)의 창조, 상체와 팔의 무게를 구사하여, 현재의 손과 손목에 주로 의존하는 나약한 타건으로부터의 탈피 등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도 없지는 않았다.
객석을 가득 메운 젊은 아우성에 그는 쇼팽의 '연습곡' 중 2곡,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등 모두 4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다.
종료 직전 인사차 무대 앞으로 나온 미색 연미복 차림의 그를 향해 '임사모' 여성팬들이 불나비처럼 몰려들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터뜨리는 카메라폰의 플래시는 어둠속의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진 객석은 온통 젊음의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한 축제장과 다름 없었다.
이날 연주를 통해 보여준 나이 스물의 빛나는 세상은 때 묻은 기성 연주가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상큼한 풋과일의 싱그러운 맛 그 자체였다.
앞으로 그의 비상이 더 높게, 더 멀리 갔으면 한다.
그래서 5년 후, 10년 후 크게 성숙해져 있을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
서석주·본지 객원전문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