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루드비히 독창회

매년 가을이 다가오면 새삼스럽게 회상되는 연주회가 있다.

1990년 10월 16일 있은 크리스타 루드비히 내한 독창회이다.

독일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로 불리는 그녀는 중후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가수이다.

메조 소프라노이지만 소프라노와 알토에 이르는 폭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고 오페라, 리트 및 종교 음악에 걸친 다양한 그녀의 음악적 성취는 피셔 디스카우에 비견될 정도이다.

예술의 전당 공연 직전에 음악 동지인 지휘자 번스타인의 부음을 접한 루드비히는 깊은 슬픔 속에서 고독한 영혼을 노래한 말러의 가곡 '이 세상에서 잊혀졌다'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곡이 끝난 뒤 일부 청중들의 박수를 제지하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서 대성악가의 위엄을 새삼 느꼈었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슈베르트, 슈만, 볼프, 브람스 가곡으로 이루어진 격조 높은 선곡이었다.

평소 음반으로만 접하였던 '저녁 노을에', '호두 나무', '그대의 푸른 눈', '조용해진 나의 잠길'을 가사가 지닌 내면의 의미를 절묘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육성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는 벅찬 환희의 시간이었다.

서울 독창회를 마친 뒤 얼마 되지않아 루드비히는 40여년에 걸친 음악 여정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후 전세계에 걸친 열렬한 팬들의 요청에 응하여 1년에 걸친 순회 고별연주회를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를 다시 방문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날의 독창회는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 공연으로 필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음악의 순간'으로 마음속 깊이 간직 되고 있다.

김일봉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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