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청도읍성

도주관·석빙고·향교…문화재 '보고'

대구 가창에서 팔조령 터널을 빠져나와 청도읍 쪽으로 가다보면 '군자정'이란 작은 정자와 연못 전체가 연분홍 빛 연꽃으로 가득한 '유등연지'가 있다.

이곳 군자정에 걸터앉아 연못에서 풍겨나오는 은은한 연꽃향에 잠시 취해본다면 넉넉한 가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곧장 5분쯤 달려가면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동상리·교촌리를 둘러싸고 있던 청도읍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청도읍성은 원래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선조 25년(1590년)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 성을 일제히 개축하며 석축으로 바뀌었다.

산성과 평지성 중간 형태의 평산성에 속하는 청도읍성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졌고, 일부 주택가 담장이나 밭둑으로 옛 모습이 남아있을 뿐이다.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객관·유향소·군기고·근민당·서역기·작청(作廳) 등 건물과 누정(樓亭)으로는 청덕루·청향루·죽서루 등이 있었고, 읍성 둘레는 1천570보(1.88km)에 벽고가 5자5척(1.65m), 여장 600척으로 동·서·북문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읍성은 불타버리고 현종 9년(1669년) 이곳 군수로 부임한 유비(兪秘)가 서문인 무회루(撫懷樓)를 건립했고, 숙종 34년(1708년)에 군수 임정(林淨)이 동문인 봉일루(捧日樓)를 다시 세웠지만 오랜 세월 속에 이젠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청도읍성은 관아와 민가가 한울타리 안에서 같이 호흡하며 거주해 그나마 도주관·석빙고·향교 등 몇몇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다.

서상리에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된 도주관(道州館)이 있다.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쓰이던 건물. 도주(道州)는 고려시대에 부른 청도군의 다른 이름이다.

정청(政廳)에 왕을 상징하는 위패(位牌)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拜禮)했으며, 양쪽에 동·서헌의 접객시설을 갖춰 이곳에 들르는 관원이 머물도록 했다.

현재 남은 건물은 관찰사 임백령(林百齡)의 힘을 받아 1543년(중종38년) 중창한 건물이다.

현재는 정청과 우객사만 남아 있고 한동안 화양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바닥과 벽체를 개조했지만 나머지는 본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화양읍 동상리의 청도 동헌(東軒)은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중심 건물이며 관찰사, 수령 등의 정청으로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졌던 곳이다.

청도 동헌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대성면(현 청도읍) 고수동에 군청사를 신축해 이전하면서 용도 폐기됐고, 동헌건물은 학교 교실로 활용돼 지금까지 용케 남았다.

지난 1963년 보물 제323호로 지정된 청도 석빙고(石氷庫)도 이곳에 있다.

이 빙고는 인위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겨울철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여름·가을까지 사용했다.

청도읍성 동문 동상리 구릉에 위치한 석빙고는 길이 14.75m, 넓이 5m, 높이 4.4m로 화강암을 지하에서 아치모양으로 쌓아올리고 흙을 덮었다.

청도읍성 복원계획에 나선 군은 지난해 3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문화재연구원에 청도읍성과 주변문화재 보수정비계획 학술조사 용역을 의뢰했다.

이원동 군수권한대행은 "읍성을 보면 도시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데, 다행히 이 지역은 청도읍이란 신도시가 형성돼 다른 지역보다 잘 보존된 상태"라며 "우선 읍성을 절반이라도 복원한 뒤 공원과 민속음식점 등이 어우러질 수 있는 테마여행지로 개발할 방침"이라고 했다.

청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사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에는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쓰이던 도주관(道州館)이 있다. 이 건물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돼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