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섬유산업에 부는 R&D바람

신기술로 불황 벗어나려 기업 부설연구소 '붐'

사상 최악의 대(大) 불황을 맞은 대구 섬유산업에 R&D 바람이 일고 있다.

아직 숫자는 많지 않지만 기업부설연구소를 통해 순수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섬유업체가 속속 등장해 연구 개발 없이 저부가 대량 생산체제에만 의존해 온 대구 섬유산업에 고부가 기능성 섬유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대구시에 따르면 8월말 현재 국내 기업부설연구소 9천990개 중 섬유연구소는 125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대구 섬유연구소는 14개에 그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신제품개발보다는 새로운 상품을 베끼는 데 익숙했던 대구 섬유산업은 그동안 연구소의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게 사실. 대구 직물업계는 5명 이상의 전문 연구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기업부설연구소 규정이 인건비 부담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연구소 설립을 외면해 왔다.

하지만 업계 불황이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대구 섬유업체들 사이에 베끼기만 해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 올해부터 기업부설연구소 설립을 시도하는 업체가 잇따르고 있다.

대구 성서공단 신풍섬유 공장은 2개월 전부터 연구소 확장 이전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7월 연구소 설립에 성공한 신풍섬유는 10월 중으로 공사를 마무리, 순수 연구인력 8명에 각종 실험기자재를 확충해 광촉매 나노가공, 옥수수 섬유 같은 첨단 섬유 개발에 돌입한다.

신풍섬유연구소 권오경 소장은 "대량 생산 시대는 이제 완전히 수명을 다했다"며 "제품경쟁력을 키우려면 R&D 투자를 늘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고부가 아이템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부설연구소를 설립한 비산 염색공단 명진섬유는 최근 5억원 규모의 정부과제를 따내 솔벤트 염료를 이용한 마이크로 직물 염색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플라스틱 염료로 쓰이는 솔벤트를 의류에 적용할 경우 세탁, 햇빛에 의한 변색을 획기적으로 줄여 제품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명진섬유연구소 김이진 소장은 "연구소가 아니었다면 정부 과제 심사에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연구소를 통해 R&D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한 대구 섬유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1985년 이후 18년 간 14개에 불과했던 대구 섬유연구소는 올해 들어서만 5개나 늘어났다.

신풍, 명진섬유 이외에도 선광염직, 삼광염직, 동진상사가 부설연구소 설립을 끝냈고 (주)유정, 삼우DFC, 부용화섬, (주)NDI, 무길염공(주) 등 5개사는 연구소 설립에 필요한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연구개발전담부서를 설치해 R&D 투자의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염색기술연구소 김종훈 기술지원팀장은 "대졸 인력들은 상대적으로 월급이 적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을 꺼려 대구 섬유기업들이 순수 연구인력을 채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며 "그러나 인건비 투자를 과감히 늘려 R&D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섬유기업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섬유패션기능대학 이용근 학장은 "대구 섬유공장들의 대졸 연봉은 초봉기준으로 1천200만원 내외에 불과해 산업연수생들과도 별 차이가 없다"며 "수준 높은 대구·경북권 대졸 인력들을 끌어들이려면 인건비에 대한 개별 기업들의 인식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 : 대구 섬유업체들이 기업부설연구소 설립을 통해 고부가 기능성 소재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4월 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부과제를 통해 고부가 염색기법 개발에 돌입한 명진섬유연구소. 김태형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