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쫓기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지난해엔 그래도 동료들과 맘 편히 추석을 즐겼는데 올해는 처지가 비슷한 동료들과 서로 위로하며 보낼 수밖에 없네요."

21일 오후 남구 대명동 '외국인 노동상담소'. 60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해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있었다.

다음주가 바로 추석이지만 이들에겐 '추석'도 '내일'도 없었다.

지난해 이맘때도 불법체류자의 몸이었으나 지금과는 달랐다.

예년엔 제2의 고향인 한국의 명절을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음식도 나눠 먹고 쉬기도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는 '외국인고용허가제' 시행에 따른 강력 단속 앞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탓이다.

한국에 온 지 4년째인 스리랑카인 놀리(29)씨. 그는 한달 전까지만 해도 경산, 검단공단 등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한 달에 1백만원 정도를 벌어 80만원 정도 고향으로 송금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중단됐다.

그는 "누나 넷과 어머니, 여동생이 제가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지난달 중순부터 이곳저곳에서 숨어지내다 보니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걱정된다"며 "한국에서 맞는 가장 쓸쓸한 추석이지만 그나마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많아 서로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필리핀 불법체류자 라이니(32.여)씨는 추석을 앞두고 그저 고국이 그리울 뿐이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공원에 가서 음식을 먹고 놀았던 기억이 더욱 또렷이 떠올라 이번 추석이 더욱 원망스럽다.

한 베트남 불법체류자는 "베트남에서도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있는데 추석이 다가오니 가족들이 더욱 생각난다"며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 등이 보름달을 바라보며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외국인노동상담소 김동현 목사는 "사업장 이동이나 폭행, 부도, 폐업 등으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명절이 되면 고향생각에 더욱 힘들어한다"며 "이번 추석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아 노래자랑도 하고 전통음식 만들기, 체육대회 등을 가질 계획이지만 그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는 27일부터 3일 간 달서구 진천동 센터에서 추석을 맞아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하는 추석 명절' 행사를 열어 송편 만들기 및 각국 음식만들기, 추석 예배, 선물나누기, 편지쓰기, 노래부르기, 연극 대회 "내가 사장이라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가질 계획이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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