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동순기자의 안동 길안천 민물고기잡이 체험

1973년 안동댐이 준공된 이후 안동지역에는 이른바 '쟁기를 팔아 배를 산' 강(江)어부들이 살고 있다.

안동호와 임하호, 반변천, 길안천 등지에서 쪽배를 타고 주낙과 그물질을 하는 이들은 자연산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 나간다.

안동시에 등록된 내수면 어업허가 신고자만 해도 100여명. 자망, 각망, 주낙, 패류채취, 투망 등 밤마다 펼져지는 이들의 어로작업은 바다 어부들을 무색케 할 정도 몫좋은 어장을 찾아 나선다.

안동·영양·청송 지역에서 전설의 어뱅이로 알려진 '석바우' 영감으로부터 고기잡는 방법을 전수했다는 '강(江)어뱅이' 김성종(41.안동시 임하면 추월리)씨를 만나러 길안천으로 향했다.

전날 약속을 단단히 하고 찾아 갔지만 오후 내내 김씨 집앞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해질 무렵쯤, 기다리다 지쳐 사무실로 돌아갈 참에 요란스러운 93년식 9인승 코란도 지프를 몰고 나타났다.

"...많이 기다렸지요. 허허. ...난 시계도 없니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그는 온종일 기다린 사람에게 미안하지도 않다는 듯 '시계 없다'는 한마디만 불쑥 건넨다.

지프 위에 고무보트를 얹고 장화바지와 그물통, 낚시바구니, 고기망태 등을 주섬주섬 챙겨 익숙하게 채비를 끝낸 그는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함께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안동포로 유명한 임하면 금소리 마을 앞 길안천. 강변은 호박만큼 굵은 자갈밭이 널려 있다.

길도 없지만 차는 덜컹덜컹 잘도 간다.

고무보트에 채비를 모두 옮겨실은 뒤 강 한가운데로 배를 몰았다.

"노 저어 봤어요?" 오늘은 강어부 조수를 자처했으니 노젓기는 당연히 기자 몫이다.

암산 보트장에서 몇번 놀이배 노를 저어본 경험을 기억해 '자신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낚시배 노를 젓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주낙 바구니를 안고 낚시줄을 펴 나갈 때 배가 일정한 방향과 속도를 유지해 줘야 하는데 사공이 서툴어 김씨가 풀어놓은 낚시줄에 되감기는 등 애를 먹는다.

산 바위 밑에서만 산다는 청지렁이. 볼펜 굵기만하다.

미꾸라지와 섞어 미끼로 쓰면 뱀장어와 메기가 잡히고 가끔씩은 자라도 잡힌다고 한다.

"이곳에서 잡히는 자연산 뱀장어와 메기는 등줄기가 푸르스름해요. 그래서 검은색을 띠는 양식 뱀장어와는 누구든지 한 눈에 비교할 수 있지요." 물이 맑아 햇볕을 많이 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물고기들의 몸통 빛깔이 연한 게 특징이라고 한다.

강을 지그재그로 왔다갔다 하며 그럭저럭 주낙 바구니 3개를 비웠다.

모두 900개의 낚시가 펴졌다는 생각에 '10개에 한마리씩이면 90마리는 잡히지 않겠느냐'고 하자 김씨는 "그럼 금방 부자되지요"라며 싱긋 웃기만 한다.

두어시간 노젓기가 끝나면서 얼치기 사공이 허리를 펴자 안쓰러운 듯 노를 달라고 했다.

물길을 거슬러 전날 그물을 처둔 장소로 옮겨가는데 '첨벙첨벙' 양손에 노를 잡은 김씨의 노젓는 모습이 시원스럽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추강(秋江)에 밤이 들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강물 위로 김이 피어 오른다.

물안개다.

손전등으로 강물 바닥을 비춰보니 물빛이 시퍼렇게 그대로 드러 난다.

깊이가 3m는 족히 돼 보임직한 강바닥. 문득 겁이 난다.

쪽배 주변은 온통 물안개. 고요한 강물 위에 두 사람만 남아있는 것 같아 신비롭기까지 하다.

김씨는 말없이 그물을 걷고 있다.

한참을 걷어도 고기잡히는 기척이 없다.

괜히 애가 탄다.

"고기 없어요"라고 물어보니 대답도 않는다.

내 탓인 듯 하는 생각에 미안하기만 하다.

"퍼더덕" 드디어 새벽 정적이 깨뜨려졌다.

아이들 목욕하는 소리 같다.

큰 놈이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좁은 쪽배에서는 큰일날 일. 숨 죽이고 목만 빼서 그물을 쳐다 봤다.

"잉어네요" 마침내 김씨도 입을 열었다.

80Cm가 넘고 머리통이 두 주먹만 한 큰 잉어다.

몸 전체가 누스름한 황금빛을 띠고 있다.

이후로 쏘가리, 꺽지, 동사리가 연신 올라 온다.

아구처럼 생긴 동사리가 한 뼘이 넘는다.

모두 시중에서는 보기 힘든 고급 어종들이다.

김씨가 고기를 떼내면 고기망태에 담는 일을 맡았다.

밤 새워 어렵사리 잡은 물고기들을 행여 놓칠까 조심조심, 온통 고기 붙잡는데 신경이 쓰였다.

20여년전 김씨는 강어부 '석바우' 영감을 만났다.

임하면 불거리 강가 오두막 외딴집에 살았던 김씨는 노인이 집에 자주 찾아오면서 열아홉살때 부터 물고기 잡는 일을 배웠다고 한다.

"노인은 5일장을 찾아다니며 가까운 강에서 고기를 잡았어요. 진보장은 반변천에서, 청송장은 용전천, 안동장은 선어대, 물고기를 강물에 두고 장을 보러 다닌 셈이지요"

명주실로 직접 그물을 떠서 고기를 잡은 노인은 물고기를 팔 만큼만 잡았다고 한다.

한복 차림새에 항상 어깨에 다래끼를 메고 다니던 노인의 모습처럼 그도 그물을 어깨에 걸친다.

"새끼고기가 그물에 걸려 죽으면 마치 키우던 짐승이 죽은 것 처럼 그렇게 아까워 했습니요. 강물 속에 사는 물고기 전부를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석바우 영감로부터 그물질을 배운 김씨는 남획이라는 건 생각도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팔기위해 미리 고기를 잡아두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산달 임산부나 노약자 기력 회복을 위한 예약이 있어야만 잡으러 나선다.

그물을 다 걷어내자 동쪽 하늘부터 먼동이 터온다.

배를 저어 강가로 나와 자갈밭에 드러누웠다.

아, 눈이 저절로 감겨온다.

난생 처음 강물 위에서 밤을 꼬박 샜다.

"이거 아까 낮에 딴 건에 가져 가이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보니 김씨가 내민 것은 굵직한 산송이. 그제서야 전날 온종일 기다린데 대한 섭섭함이 풀렸다.

'아하! 없는 살림에 손님이 온다니 선물을 준비하느라 산을 헤매고 다녔구나!' 김씨를 위해 아무 것도 준비를 못한 내가 너무 염치없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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