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보름달은 자꾸 창백해간다

재당숙과 벌초를 하러 갔더니 소나무가 둘레를 이루고 있고 잔디가 잘 자란 증조부 산소 앞에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챙 넓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벌초를 한다고 일어나라고 해도 그냥 누워 있었다.

풀 깎는 예초기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예전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새삼스럽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박한 사람들이 살았던 시절의 고향이 그리웠다.

고향집에는 과실나무가 많았다.

능금나무와 감나무를 비롯해서 복숭아, 배, 대추, 이스랏, 고욤, 산수유 등 수없이 많았다.

산수유는 대청 앞 우물가에 있었고, 감나무는 집 안팎을 온통 덮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마을 사람들의 휴식터가 되기도 했다.

어린 날은 과실나무 성장의 꿈에서 보내게 되었다.

봄 햇살 아래 만발한 홍도화에는 꿀벌이 무수히 윙윙거렸고, 돌담에 핀 이스랏이 아우성 치듯 골목길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달이 밝아 배꽃 아래 외로이 서보면, 성결(聖潔)하고 연연(姸姸)한 꽃의 정령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과실나무들의 꽃잔치가 끝나면, 우리 집 안팎에는 감꽃이 한창이다.

젖꼭지처럼 매달려 있다가는 며칠 만에 시나브로 떨어지는 황백색 감꽃이 잠자고 나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감꽃을 꿰미에 꿰어 목걸이를 많이도 만들었다.

그럴 무렵이면 논에는 볏포기가 땅 내음에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감나무는 잎사귀마다 윤기로 번들거렸다.

그것을 아이들은 "벌이 오줌을 쌌다"고 말했지만 나는 꿀 냄새가 나는 꿀물이 번들거리는 잎사귀를 따다가는 동생과 혓바닥으로 핥아 먹었다.

제법 굵직한 풋감이 떨어지면 단지에 며칠간 담가 두었다가 떫은 맛을 삭여서 먹을 때가 되면 감나무 가지엔 홍시(紅枾)가 드문드문 생기어 어린 가슴을 애태웠다.

추석에 그 홍시가 차례상에 오르게 되고 들판엔 벼가 누렇게 영글어가며 산에는 송이버섯, 상두버섯, 국수버섯이 한창일 때 감의 향연은 시작된다.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감나무에 올라가서 가지에 걸터앉아 잎사귀 속에 숨어 있는 홍시를 장대 끝에 달아맨 올가미로 따먹던 달고 단 홍시 맛, 서리가 몇 차례 내리고 잎사귀에 힘이 빠지면, 할아버지께서는 나무에 올라가서 장대로 한 개씩 가지째로 또옥 또옥 꺾어서는 밧줄을 단 망태에다 넣으셨다.

얼마는 궤짝에 갈무리 하시어서 이듬해 봄까지 먹을 수 있었다.

돌감나무, 또아리감나무, 반시감나무, 두리감나무, 우리 집에 있었던 감나무 이름을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외우고 있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 과수밭은 남의 손에 넘겨졌고 우리는 도회지로 이사를 했다.

추석날인데도/ 우리는 고향엘 못 간다/ 거제도에서 온 이씨는 차표를 못 샀다/ 해당화 피는 명사십리가 고향인 김씨는/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던 곳이다/ 소득은 높아 가는데도/ 보름달은 자꾸 창백해간다/

30대 전후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자주 읊던 시(詩)다.

성장의 과실나무와 함께 자라온 유소년의 꿈이 내가 읊던 시처럼 퇴색해 버렸다.

감을 딸 무렵의 우리 집 경치는 전설에 얽힌 갓바위가 멀리 바라뵈는 팔공산을 등지고 가지가지 과실나무에 파묻힌 외딴집의 경색(景色)은 나에게는 무릉도원이 아닐 수 없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본다.

귀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없는 평범한 과실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옛날 우리 집 감나무 잎사귀의 미혹함에 이끌려 장독간에 떨어진 잎사귀의 수줍은 빛깔의 아름다움을 나처럼 오랜 세월 동안 보아온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 가슴 안에 새겨져 있을 영원한 동경의 아름다움이리라.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힘겨운 생활에 세월의 흐름도 잊고 지내다가 장독대에 떨어지는 붉은 감잎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누이의 소박한 마음이 그립기만 하다.

도광의(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