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과거와의 화해

요즈음 우리 사회는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다.

일본 교과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정리, 과거사 규명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이르기까지, 이 복잡한 문제들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할 과제가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진실 규명을 통해 과거를 청산하거나 과거와 화해하는 일이고, 궁극적으로는 해방 후 60년 동안 민주주의혁명과 산업혁명의 이중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온 한국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바로 이런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해가는 과정의 일부로 이해되기 보다는 다시 고약한 정쟁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기본적인 형법보다 5년 앞서 1948년 12월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여순사건 등 당시의 비상시국 하에서 제정된 임시적 성격의 한시법이었다.

그러기에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은 '국가보안법이 한시법이고 형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유엔 인권기구들이 1992년과 1995년에 이어 1999년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우리 정부에 권유한 바 있다.

심지어는 토마스 하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조차 1995년과 2001년에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국제앰네스티도 지난 9월15일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의미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로 국제사회의 여론이나 국가보안법이 지닌 한시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폐지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우선 국민들에게 국가보안법의 형성과정이나 그것이 끼친 폐해 그리고 문제가 되는 법 조항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부족한 데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이 일찍부터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린 것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또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

또한 국민들 사이에 지난 60년 동안 겪어온 분단현실이나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포감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인사들의 주장에서는 한국전쟁 중의 공산주의자 만행이나 그후의 북한에 의한 도발적인 테러행위,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위협을 들어 우리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적이 상존해 있고,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지난 50 여년의 세월동안에 국가보안법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기능보다는 독재자나 부패한 정치권력이 정권을 유지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어 왔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서울법대 최종길교수 의문사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은 모두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인권유린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정부 욕한 것 때문에 잡혀간 피해자는 얼마나 많은가?)

물론 분단국가에서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굳이 '국가보안법'이어야할 이유는 없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이 법은 어두운 과거에 행해진 인권탄압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남북간의 대결과 갈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고, 북한 핵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반 세기동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국제사회에서도 이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시민사회도 성숙하게 되었고, 국민들의 민주의식도 향상되었다.

또한 남북관계는 이제 힘을 통한 대결보다는 대화와 화해, 평화체제를 통해서 풀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동북아의 정치정세도 이제는 적대적 대결보다는 동북아공동체를 통해서 평화를 실현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는 국가보안법으로부터 결별하고, 형법의 보완을 통해 국가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극복하고, 과거와 화해할 줄 아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할 것이다. 정현백(성균관대교수. 한국여성단체엽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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