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리 통일전을 지나 남쪽 마을 복판 절터에 21m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우뚝 서 있는 보물 제124호 남산리 삼층석탑(南山里三層石塔). 가을철로 접어들며 절터 옆에 있는 통일전은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지만 탑을 찾는 관람객은 찾아볼 수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쌍탑은 대체로 동일한 양식으로 축조되는데 비해 남산리 쌍탑은 각각 양식이 다르게 표현돼 있어 흔치않은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마주 서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동·서로 건립된 특이한 예의 쌍탑으로 동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올린 모전석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서탑은 전형적인 3층 석탑 양식이다.
동탑은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이 넓게 2층으로 깔려있고 그 위에 잘 다듬은 돌 여덟개를 짜 맞추어 기단부(基壇部)를 이루고 있다.
탑신부(塔身部)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돌 하나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일련의 받침돌과 낙수면이 모전석탑처럼 똑같이 각각 5단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서탑은 위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2단의 기단은 한 면을 둘로 나누어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새겼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돌 하나로 되어있고 각 층에 모시리 기둥을 조각했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양피사터로 전해오는 이 절터에는 3층쌍탑 외에도 석등연화하대석(石燈蓮華下臺石) 한 개가 남아있다.
경주시 남강호 문화재과장은 "절터가 있는 있는 오산골 일대는 원래 피리(避里)또는 피촌으로 불렸는데 행정구역 이름이 남산리인 까닭에 이 탑들이 남산리 남산사 절터 쌍탑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동탑은 2.88m 너비에 1.5m 높이의 방형 단층기단 위에 삼층으로 쌓은 석탑이다.
기단 밑에는 2중으로 된 고임돌이 놓여 있는데 하층은 길이가 5.35m, 상층은 3.55m 되는 고임돌이 놓여 있으므로 탑의 자태는 안정되고 장중하게 보인다.
기단을 쌓은 여덟개의 석재는 높이 0.71~0.76m와 길이 1.36~1.74m로 서로 다르다.
크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돌과 돌이 연결된 선이 아(亞)자형으로 돼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전(田)자로 된 균제미(均齊美)는 변화가 없고 분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조상들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이 탑의 남쪽 가단면은 전자 모양으로 조립돼 있다.
때문에 전자로 된 돌이음 중앙에다 직사각형(70.5cm × 13cm) 쐐기를 박아 놓아 균제미를 깨트려 놓은 것이다.
돌 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신경을 쓴 신라인들의 고심은 속임수를 쓰지 못하는 천성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단 위에는 새 계단으로 된 옥신(屋身) 고임돌(1.67m × 0.35m)이 놓이고 그 위에 기둥없는 첫 옥신(71.3cm × 1.29m)이 얹혀져 있다.
첫 옥신은 위 옥신보다 넓다.
옥신 위에는 5단의 옥개받침에 받들리어 길이 2.22m 되는 넓은 추녀가 일직선으로 가로 놓이고 낙수면도 계단식으로 경사를 지어 벽돌탑의 흉내를 낸 지붕을 만들고 위에 2층 옥신을 얹어 놓았다.
2층과 3층의 높이는 첫 옥신 높이의 반 이상이나 줄였는데 비해 옥신 너비와 옥개추녀의 너비는 비례로 축소되면서 솟아있어 기묘한 느낌을 준다.
지붕 위에는 노반(露盤)까지만 있고 그 이상의 상륜부는 없어졌다.
이 탑의 특색은 기단이 단층으로 돼 있는 점과 옥신에 기둥이 없는 점, 지붕 위 낙수면에도 계단이 새겨져 있는 점인데 이러한 것은 분황사탑을 충실하게 모방한 것으로 신라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다.
동탑이 벽돌탑(전탑)을 본뜬 데 비해 서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첫 옥신 넓이 1.08m, 상층기단 넓이 2.22m, 하층기단 넓이 3.07m로 상층기단의 넓이는 첫 옥신 넓이의 2배, 하층기단의 넓이는 첫 옥신 넓이의 약 3배가 되는 비례다.
이는 지극히 안정된 삼각형 구도의 기단 위에 층층의 옥신(탑신)들은 체적을 줄이면서 수직으로 솟아있다.
층층의 옥개석 추녀는 곡선을 그리면서 날 듯이 양끝을 치켜들고 있다.
추녀 끝의 들린 부분을 전각(轉角)이라 하는데 신라의 석탑은 9세기 초를 전후한 시대에 이르러 전각이 예쁘게 경사를 지으며 날씬한 맵시로 나타난다.
9세기 초를 전후한 신라석탑에는 탑기단 면석에 12지상이나 팔부신중을 새기고 첫 옥신에 사천왕상을 새겨 화려하게 장식하는 예가 있다.
이러한 것은 탑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탑을 수미산(須彌山)으로 나타내어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 위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려는 신앙적인 바람에 의한 것이다.
서탑에는 상층 기단면석에 돌아가면서 팔부신중을 돋을새김하였는데 남면 왼쪽에는 건달바, 오른쪽에는 아수라, 동면 오른쪽에는 야차, 동면 왼쪽에는 용(龍), 북면 오른쪽에는 긴나라, 북면 왼쪽에는 마후라가, 서면 오른쪽에는 천(天), 서면 왼쪽에는 가루라상이 있다.
건달바는 악기를 타고 춤을 추면서 우리 인간들을 즐겁게 해주는 신으로 구름 위에서 사자탈을 쓰고 앉아 장단을 맞추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수라는 지옥의 왕으로 얼굴이 셋이고 손마다 무기를 들고 괴물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위로 올려든 손에는 비바람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여의주가 들려 있다.
아수라가 화가 나면 여덟개의 팔을 휘두르며 온세상이 뒤죽박죽이 되므로 그러한 상태를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가루라는 새나라의 왕으로 몸체와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나 입만은 독수리 부리처럼 날카롭게 튀어 나왔다.
모두 철갑으로 무장한 것은 부처님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고 구름을 타고 천의 자락이 나부끼는 것은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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