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출신 문인들의 '문학청년 시절'

되돌아보는 60~70년대의 대구

요절한 기형도 시인은 대구를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그 신비한 도시'라고 했다.

이처럼 전국에서 '문학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대구 문단의 1960~80년대를 회고하고, 지역 출신 문인들의 고뇌에 찬 문학청년시절을 오롯이 담은 책이 출간돼 주목을 끈다.

9일 나오는 '부서진 조각들처럼 반짝였다-나의 문학청년 시절 이야기'(도서출판 시월). 대구 시다리기 추진위원회가 발간하는 이 책에는 지역 출신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인 19명이 필진으로 참여해 지역 문단의 이면사에서부터 문학을 꿈꾸던 젊은 시절의 아름답고도 슬픈 추억 등을 담아냈다.

문인들이 털어놓는 문학청년 시절에 겪은 에피소드와 교우관계, 그리고 지역 문학의 요람 역할을 한 대구YMCA와 향촌동, 동성로의 술집과 다방, 음악감상실 등의 풍경은 독자들로 하여금 추억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연탄시인'으로 불리는 안도현 시인은 '태동기, 그리고 시인 도광의 선생님'이란 글에서 70년대 후반 대건고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 동인이 된 사연과 은사인 도광의 시인을 추억한다.

"선생님의 빨간 볼펜이 내 노트에 적힌 시에 닿을 때마다 나는 생살이 베어지는 것 같은 지독한 아픔을 느껴야 했다…. 스무 줄 짜리의 시가 열 줄도 채 남지 못하고 앙상하게 뼈만 남는가 하면, 선생님의 볼펜 끝에서 아예 자신의 숨소리를 놓아버리는 시들도 생겨났다.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날의 비참함이 없었다면 '언어'를 함부로 남발하거나 혹사시키는 언어의 난봉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안 시인은 "언어를 절제하는 능력이 손톱만큼이라도 보인다면 그것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라며 "세월의 손때가 묻고 귀가 닳은 선생님의 시집을 종종 펼쳐보곤 한다"고 털어놨다.

소설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씨는 '문학적 자서전-사랑의 흔적'을 통해 친구 4명과 만든 '계단문학동인회'와 고인이 된 선배와 얽힌 추억을 소개했다.

중요한 백일장에서 한 명도 입상하지 못한 날이면 줄빳다를 맞거나 여학생들이 많이 찾아온 시화전 전시회장에서 '머리 박아'를 했던 추억, 염매시장의 막걸리집에서 '클레멘타인'을 불렀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본다.

이씨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아껴준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침묵한다는 것…. 생전에 성종하 형이 좋아했던 그 말들이 하늘과 땅에 서글픈 뉘우침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박해수 대구문인협회장은 60년대 대구YMCA에서 개최됐던 문학의 밤과 미당 서정주 등 선배 시인들의 시를 끌어 안고 목놓아 읊고 읊조렸던 시절을 추억했다.

박 회장은 "향촌동 고구마집의 막걸리, 대구시청을 지나 돌체 동문 지하다방까지, 이호우 구상 김춘수 신동집 시인, 십대의 YMCA시절과 20대 대학시절 등이 지금도 자주 떠오른다"며 "YMCA 건물속에 꽃 핀 젊은 시인들의 힘은 누가 끄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피어나는 한송이 들국화 같기도 하고 풀꽃 같기도 하였다"고 되돌아봤다.

이밖에 '저 흰 구름, 잘못 든 길'(문인수) '나는야 발표하는 인생이 좋다'(박덕규) '쉬어가는 집과 우아다방 그리고 녹향 하이마트'(서원동) '참 많이 아름다운 시절'(서정윤) '장독대와 석류나무'(서지월) '대학시절과 지난날 되돌아보기'(이태수) '부서진 술병 조각들처럼 반짝였다'(이하석) 등의 글이 같이 실렸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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