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홀로 있는 것은

혼자 있다는 생각마저 잊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떠난 저물녁

내 긴 그림자 회색 빛 보도 위에

빛 바랜 혼령처럼 짙게 드리울 때면

내 마음 갈 곳 잃어 홀로 허공 속에 떠도나니

사랑하는 이여

내가 참으로 홀로 있음에

혼자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듯

참으로 그대를 사랑함에

사랑한다는 생각마저 잊는 것입니다

하청호 '사랑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틈과 사이와 거리를 전제로 하는 이성의 활동이다. 이성은 언제나 따지고 살펴 너와 나 사이의 차이를 알고 싶어한다. 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같이' 있는 것이므로 참으로 홀로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랑의 궁극엔 틈과 사이와 거리가 끼어 들지 못한다. 사랑함에 사랑한다는 생각마저 잊는 것, 오직 너는 나인 것, '내 마음 갈 곳 잃어 홀로 허공 속'을 오래 떠돈 자만을 위한 드문 축복일 터.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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