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잘 해보자고 열린 국회 국감이 난데없는 국가기밀 시비에 휘말려 삐꺽대고 있다.
북한의 장사포(長射砲)가 일시에 불을 뿜으면 서울의 3분지 1이 초토화 되고 미국이 거들어주지 않으면 16일만에 끝장난다는 발언이 국가 기밀 누설이냐 아니냐는 시비가 급기야는 스파이 행위니 의회 탄압론에 이어 고발사태로까지 번졌다. 국감 아닌 정쟁(政爭)이 돼버린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 입장에서는 싸움 구경의 재미는 고사하고 이번엔 뭔가 다르려니 했던 17대 국회도 별 수 없이 그렇고 그런 국회요 자칭 '개혁 국회'는 개혁이란 이름값도 못한다는 부아가 치밀 수밖에 없다.
국가기밀은 지켜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범위와 내용은 국민의 알권리와 국익 사이에서 조화롭게 선이 그어져야 한다. 과거처럼 정권유지나 국정 실책을 덮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오남용 돼서도 안되고 알권리를 핑계로 정적 공격에 악용돼서도 안된다.
따라서 국가기밀의 기준은 다수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 그 국가가 처해있는 특별히 고려해야 할 상황을 바탕으로 실질적 국익 중심으로 판단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왕조 시대에야 왕이 앓고있는 질병의 병명까지도 국가 기밀이긴 했다. 세종 23년(1441년) 청나라에 간 사신 고득종이 청의 예부상서에게 "세종께서 소갈병(당뇨)를 앓고 있어 청(淸)의 약재를 얻고자 한다"는 간청을 했다가 사절단 5명이 의금부에 구속된 사건도 비록 왕의 약을 구하려 한 충정의 발언이었지만 왕의 건강상태 공개를 국가 기밀유출로 본 경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비밀리에 돌팔이 의사로부터 마약효과가 있는 중독성 약물을 수년간 주사받았다는 비밀도 사후 수십년이 지나고서야 공개됐다.국가기밀의 정의를 광의(廣義)로 해석하고 확대해석된 경우다.
이번 장사포와 16일 서울함락 발언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한 악담은 이미 수년전에 귀따갑게 들은 얘기고 어느 여당 국회의원은 국회도 아닌 수도이전 홍보 행사장에 나와 북한 장사포는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위협으로 간주했다. 기밀로 보기엔 타당치 못하다.
16일 서울 함락 발언은 국방연구원이 지난 4월 공개 발행한 2003년 연구보고서에서 "미국의 전략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그 설정된 상황을 바탕으로 미2사단 재배치 전력전개에 대한 '모의분석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설정해 …"라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 표현대로면 어디까지나 16일은 '시나리오'상의 날짜였다.
여당이 보기에는 비록 시나리오라 하더라도 북한군으로서는 "미국만 없으면 남한 수도 까부수는데는 16일이면 되는구나"하고 어림짐작할 정보만으로도 큰 수확이 될 수 있고 따라서 공개유출은 이적행위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야당은 "전쟁이 무슨 영화나 드라마냐. 시나리오대로 치러지는 전쟁이 어디 있느냐. 반미좌파세력이 한미동맹을 흔들어놓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자주국방 자주국방 자신만만 하던데 막상 국방연구보고서에는 단 두주일만에 수도서울이 무너질 수도 있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냐. 이 엄청난 놀라움과 우려를 국민들과 함께 걱정하고 대책을 생각해보자고 말 꺼낸게 스파이 라니"하고 대들 수도 있다. 시나리오로 치자면 1메가톤급 기본형 핵폭탄 1개만 2천500m 서울 상공에서 터뜨리면 16일이 아니라 단 2초만에 끝장나는 시나리오 같은 것도 초교생 수준이면 쓸 수 있다.
시나리오는 상상력에 의존한 가상 현실의 설정이나 안보는 1만분의 1의 가상적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것이 마땅한 만큼 시나리오라고 해서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국감이 파행으로 가도 좋을 만큼 피터지게 싸울 기밀 논란거리였느냐는 생각도 좀 해봤으면 한다.
꼬투리 싸움만 할게 아니라 가장 멋진 대북 시나리오는 어떤 것이 좋을 것인지나 머리맞대고 의논해보라. 예를 들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살하고 어린이를 굶주리게 하며 경제는 파탄인데 핵무장만 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고 3천만 북한 인민이 자유와 민주주의 경제체제의 풍요를 함께 누리며 통일한국을 이뤄가는 시나리오 같은 것이다. 여야와 노정권 모두는 바로 그런 시나리오를 실현하는데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기밀보호 싸움보다 더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행동이다. 고작 16일만에 내 나라를 결단 낼 수 있는 위험한 폭력 정권을 코앞에 두고 적전분열로 국론과 국력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기밀유출보다 더 큰 이적행위다.
김정길(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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