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소재한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이 안 돼서 구조 조정의 압력을 받고 있는 와중에 서울에 있는 일류 사립대학에서 고교 등급제를 사용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일부 상위권 수험생들에게 해당되는 이런 사안에 언론들이 왜 대서특필하는지, 다수의 학부모가 왜 그리 민감한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학벌사회'라는 이유 외에는 별다른 해답을 찾기 힘들다.
은행이나 백화점에서 우수고객에게 별도의 혜택을 준다고 할 때 일반 고객들이 그런 혜택이 차별이라고 대들거나 언론이 이를 크게 취급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일류 대학에서 출신 고교에 따라 별도의 혜택을 준다고 하면 왜 교원단체, 학부모, 언론이 술렁이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출신학교에 따라 엄청난 혜택을 누리기도 하며 반대로 억울하게 차별당하는 '학벌사회'이며, 이를 알고 있는 국민들 대부분이 마음속의 응어리를 가진 '학벌 콤플렉스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벌사회에 대한 엄청난 혐오감을 가진 사람조차도 일상적 현실에 돌아오면 자기자식으로 하여금 최고의 학벌을 갖도록 종용하고 있으며, 이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모순을 범한다.
학벌 사회를 혐오하긴 하지만 그 거대한 틀을 혼자 힘으로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그 사회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변명이 된다.
고교 등급제를 실시한 대학에 대한 시민적 저항은 그 대학에 학생이 지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불량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에 참여하는 소비자 운동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집단행동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언론과 교원단체, 학부모단체들이 대변자로 나선다.
그런데 과연 이들의 주장이 대다수의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들의 주장은 상위권 수험생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자기 단체의 이념과 이익과 결부된 입장을 전달하는 정도에 해당되는 것이다.
고교 등급제 도입 문제는 기여입학제 도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팽팽한 찬반 대립의 상황으로 돌입할 것이며, 그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도 마련되기 힘든 교착 상태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은 다시 학벌 사회의 폐단으로 돌아가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적 학벌사회의 문제를 통찰해야 한다.
선진국에도 학벌사회가 존재하지만 우리처럼 심각한 '외관 중시형 연고적 학벌사회'가 아니라 '성취 중시형 개인주의적 학벌사회'라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미국에도 하버드 클럽이, 영국에도 옥스퍼드 클럽이, 일본에도 동경대학 학벌이 있지만 개인의 성취력을 더 중시하며 집단적 보호를 통한 배타적 혜택을 누리려는 성향이 약한 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유교적 외관주의가 아직도 크게 성행하고 있으며, 어떤 학벌집단에 속하는가를 중시하는 전근대적 문화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법 잘나가는 대학이나 고교 동창회가 설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밖으로 나타난 간판에 목매는 사회적 조류가 계속되는 한 고교 등급제 같은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문제가 된다.
선진국에서도 그러했듯이 우리가 학벌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고교 평준화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교평준화가 고교중심의 학벌사회의 문제를 완화하는데 기여한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만일 다시 일류고등학교가 생긴다면 중학교 평준화가 다시 문제가 될 것이고, 일류 중학교가 생겨나면 과거처럼 초등학교 과외가 극성할 것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학벌사회 타파를 위한 극단적인 처방은 대학을 평준화하고 사회를 평준화하는 것인데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일을 조급하게 몰아치지 말고 시간적으로 긴 호흡을 하면서 조금씩 성찰적으로 고쳐나가도록 해야 한다.
즉, 고교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되 문제점을 최대한으로 보완하고, 지나치게 서열화된 대학의 등급을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스스로 학벌사회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학벌 편견'을 버리기를 실천해야 한다.전영평 대구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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