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등-감옥 같은 합숙소가 부른 방화

"합숙소만 불타 없어지면 합숙 안하고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며 놀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합숙소에 불을 지른 혐의로 8일 경찰에 붙잡힌 ㅇ중학교 씨름부 학생 3명은 "불 지르는 것이 이렇게 큰 죄가 되는 줄 생각 못하고 단순히 합숙이 싫어 일을 저질렀다"며 고개를 떨궜다.

매일같이 8시간 이상 계속되는 고된 훈련도 힘들었지만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합숙'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

이모(14)군은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어떻게 하면 합숙을 안 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며 "제대로 된 합숙 시설도 없이 탈의실을 개조해 사용하던 터라 불편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교육청에 전화, '불법 합숙을 하고 있다'고 제보도 해 봤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달 29일 중학교 씨름부 합숙소 보일러에서 석유 1.5ℓ를 빼내 이불에 붓고 불을 붙이기에 이렀다.

더구나 화재 뒤 학교 측에서는 경찰조사에서 단지 '탈의실일 뿐'이라며 합숙소란 사실을 극구 부인하자 이들은 또다시 고교 씨름부에 불을 지르게 된 것. 사실 현행 규정상 학교 체육 특기생에 대한 합숙은 '불허'되지만 지키는 학교는 많지 않다.

지난해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 이후 교육부에서는 2주 이상 상시 합숙에 대해서는 교육청 및 시 교육위원회에 보고하고 지정된 합숙시설을 갖춘 뒤에만 합숙을 할 수 있도록 규제했다.

그러나 마땅한 제재장치 등이 마련되지 않고 '권고사항' 정도로만 운영된 탓에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교육청 몰래 합숙을 계속해 온 것. 학교 인근 주민들은 "매일같이 체벌소리가 들려와 이미 이 같은 사고는 예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ㅇ중학교 관계자는 "어린 학생들을 체육계 재원으로 키워내기 위해선 '합숙' 등 체계적 훈련이 불가피했다"며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인 탓에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훈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나이 어리고 초범이어서 이틀 만에 유치장을 벗어난 이들 3명은 "창살 안에 갇혀있는 기분은 정말 끔찍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고 열심히 훈련해 꼭 성공한 씨름선수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씩 웃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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