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상실의 계절

비록 한 점 먼지같은 인연조차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이 드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전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이 타계했다는 소식에 왠지 가슴 한 자락이 싸아해졌다. '슬픔이여 안녕'이란 그녀의 소설은 청춘의 낭만과 방황, 슬픔이 어우러진 그 제목만으로도 얼마나 우리를 매혹시켰던가. '사강'이란 이름 또한 풋사과를 한입 와싹 깨물 때처럼 상큼한 이미지였다. 지난 1960, 70년대를 풍미했던 청춘의 상징 사강이 영원 속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아련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게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며 또 한번 가슴 속으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영화 속의 그는 평소엔 뿔테안경을 쓴 엄벙덤벙한 신문사 기자의 모습이다가도 위기가 발생했을 땐 푸른 타이츠차림에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나이로 변신하여 지구촌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다. 9년전 승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재활의 의지를 다지며, 사고나 재해로 다친 사람들이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쳤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수호천사였다. 그러기에 그의 강인한 투혼이 다시 그의 몸을 일으켜 온갖 악으로부터 이 사회를 지키는 슈퍼맨으로 부활하기를 기원했던 세계인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짙푸를 것 같던 나뭇잎들도 어느새 윤기를 잃었다. 꽃보다 아름답게 물드는 것들도 있지만 검버섯처럼 보기 흉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눈부신 단풍도, 메마른 가랑잎도 결국엔 땅으로 돌아간다. 새삼 우리 인간 역시 생성과 소멸을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갑작스런 지인들의 타계소식과 친구며 이웃들의 와병소식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하다. '죽음의 신은 어느 집 앞에도 무릎을 꿇는 검은 낙타'라는 서양속담마따나 우리 모두 결국은 시한부 인생 아닌가.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글에서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고 했다. 가을은 때때로 자신 속으로 고요히 침잠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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