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平準化실패'가 근원

보안법·과거사문제로 가뜩이나 나라가 시끄러운 판국에 '고교등급제'파문까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언제 터지느냐, 다만 그 시기가 문제였지 그동안 곪아온 우리교육의 고질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어차피 문제가 터져나온 만큼 이번 기회에 근원적인 처방을 교육부가 주축이 돼 반드시 내놔야 할 계제이다. 한마디로 '고교등급제'를 일부 대학에서 입시사정에 적용했다는 건 '고교평준화'가 결국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교육부는 우선 이 엄연한 현실부터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바탕위에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또 일부 대학에선 왜 교육부가 강력하게 금지해온 '고교등급제'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실상을 있는 그대로 털어놔야 한다. 전교조나 교총, 서울대, 10개 지방국립대가 각각 그 의견을 내고 있지만 이 문제를 진정 해결하겠다는 진지한 의지가 있다면 우선 교육부와 문제된 대학들 간의 솔직한 실상부터 경청하고 대안이 나올때까지 일단 관망해야 한다. '고교평준화'는 입시과열에 따른 망국적인 과외를 추방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꾀한다는 취지에서 채택한 것이다.

◇ 고교별 학력고사 성적부터 밝혀라

그러나 그동안 수십년이 지나면서 2002년을 기준으로 사교육비의 규모는 연간 무려 1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불어났고 일부 음성적인 것까지 합하면 그 액수는 훨씬 많다. 이를 감안하면 정부예산의 약 20%로 교육부 예산을 능가하는 액수가 학원이나 개인과외비로 가계에서 지출됐다는 계산이다. 초등학생의 80%, 중학생 75%, 고교생 56%가 갖가지 형태의 과외를 하고 있다는 통계는 뭘 의미하는가. 망국적인 과외는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에 다름아니다.

교육부가 전국고교생들을 상대로 치른 학력고사의 성적을 굳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건 대학에서 얘기하는 고교간 성적격차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고교평준화'는 그야말로 허울이라는 얘기와 같다. 게다가 '수능'만으로 고교교육의 정상화가 안된다는 이유로 내신성적까지 반영토록 대학에 강제했지만 이번엔 성적뻥튀기로 심지어 200명 중 100명이 1등급이라는 기상천외의 사단까지 벌어지고 있다. '고교평준화정책'을 더이상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지켜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나온 게 '고교등급제'였다. 게다가 200명중의 1등과 20명중의 1등간의 문제는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서열화했다는 게 일부대학의 설명이다. 가급적 우수한 인력을 뽑아 대우와 전망이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많이 내보내야만 대학이 살아남는 길이고 국가경쟁력도 높이는 길이라면 오히려 권장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 수업시간엔 잠을 잔다는 어느 중학생의 말을 교육부는 어떻게 설명할건가.

교육부 산하 일선 초중고교에선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과외는 더욱 기승이고 학교간의 성적격차는 자꾸 벌어지고 있는지 조리에 닿게 설명할수 있는가.

◇ '등급제' 적용따른 過誤는 없었나

경위가 어떠하든 교육부의 감독기능 부재와 일선 학교의 부실교육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는 결과가 아닌가. 따라서 우선 교육부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고교간 성적격차의 실상을 공개하고 그 격차를 줄이는 비상수단이 없다면 더이상 '고교평준화'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차라리 '선발고사 부활' 소리가 나온다. 교육부는 걷잡을 수 없는 과외를 걱정하지만 그 과외는 이미 거의 갈데까지 간 상태이다.

이런 '현실'을 교육부가 적당하게 호도하고 이른바 三不(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 금지) 법제화만 서둔다면 우리의 교육은 그야말로 망국적인 길로 접어드는 것이 된다.

대학의 '고교등급제'도 어떻게 실시했는지 밝혀야 한다. 지난 3년치의 특정학교 성적을 기준으로 입시생 전체를 일률적으로 차별했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도 옥석(玉石)구분 장치는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런 구분조차 없었다면 '소송 불사'라는 반발을 스스로 부른 격이다.

이런 일부 과오가 있었다면 그것도 솔직히 인정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정보 부재'의 실상도 함께 밝혀야 한다. 이런 양측의 실상 공개를 토대로 우리교육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진정 '과거사 정리' 대상 아닌가.

朴昌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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