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범어동 풍경-(11)마당법정

'마당 법정'을 아십니까?

소송 당사자들이 법원 마당에서 스스로 벌이는 재판(?)을 뜻합니다.

판사나 변호사도 없이 진행되는 재판이라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논리나 설득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할 수도 없지요.

처음부터 온갖 '육두문자'가 난무합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다 결국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드잡이질로 진행됩니다.

상대방이 달아나면 법원 정문까지 쫓아가 욕을 쏟아내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것도 청원경찰이 이들을 떼어 놓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재판을 통해 당사자간의 분쟁을 해결하려 왔다가 오히려 '폭력적인' 방식에 기대는 것이 현실이지요. 이런 일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일어납니다

이들의 사연은 다양합니다.

'내돈 떼먹고 얼마나 잘 살지 두고 보자'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채무관계로 빚어진 분쟁이 가장 많은 듯합니다.

'네 때문에 내 아들을 망쳤다'거나 '얼마 받고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라는 말도 가끔씩 나오지요.

근데 흥미로운 사실은 드잡이질을 하더라도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자가 1년동안 이들을 쭉 지켜봤지만 싸우는 흉내(?)에서 끝날 뿐, 정말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를 두고 한 법조인이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지요. "좀 좋게 보자면 재판에서 제대로 풀지 못한 엉어리를 해소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재판정에서는 판사를 의식해 상대방에게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거나 못다한 말을 마당에 나와 한꺼번에 풀어놓는 것이지요.

그중 가장 격렬한 것은 '이혼재판'이 끝난 뒤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채권·채무자의 관계와는 사뭇 다른, 너무나 살벌한 싸움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덤벼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싸움 중에 "너 때문에 신세 망쳤다"는 말이 항상 따라붙습니다.

대구지법 가정지원이 지난 2001년 평리동으로 분가했을 때 이를 가장 반겼던 이들이 바로 청원경찰이지요. "이혼재판이 열리는 날은 정말 끔찍합니다.

남자가 때리고 여자는 도망가고…. 한때 정을 나눈 부부들이 헤어지고 나면 남보다 훨씬 더하더군요."

요즘도 여성들이 남편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경호업체 직원까지 대동하고 재판정에 오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합니다.

남자쪽 어머니와 여자쪽 어머니가 싸우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지요.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차가운 법 논리보다는 화끈한(?)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많은 듯합니다.

인간관계에 '믿음'이 깨진다면 법도 그다지 쓸모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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