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가을의 전설

영화 '가을의 전설'은 형제와 연인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 아름다운 가을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다.

삼형제 중 맏이인 알프레드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현실주의자요, 둘째 트리스탄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고향을 지키는 두 형과는 달리, 도시에서 대학을 나온 막내 사뮤엘은 정의와 진리에 심취한 최고의 지성이었다.

약혼녀 수잔나를 동행한 사뮤엘의 귀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청순한 수잔나는 약혼자의 형인 트리스탄을 처음 본 순간,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을 직감한다.

트리스탄 역시 동생의 여자라는 넘어설 수 없는 대상을 애써 외면하려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뮤엘은 자유 수호에 대한 사명감으로, 약혼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전한다.

동생을 보호하려고 전쟁에 따라나선 트리스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뮤엘은 전사하고 만다.

트리스탄은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수잔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수잔나는 기약없이 떠나버린 트리스탄을 기다린다.

그러나 지루한 세월이 흐른 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는 트리스탄의 편지였다.

유명 정치인이 된 맏형은 트리스탄이 수잔나를 버린 것을 알고 청혼하고, 절망한 수잔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해 가을, 트리스탄은 방황 끝에 사랑의 숙명을 깨닫고 돌아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끓어오르던 내면 세계가 안정된 트리스탄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불행은 쉽게 찾아오고, 행복은 유지하기 어렵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들에게 파경이 닥친다.

이권 다툼으로 마피아의 공격을 받아 트리스탄의 부인이 살해되고, 마피아에 매수된 경찰에 오히려 트리스탄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남의 부인으로 살지만, 한시도 트리스탄을 잊은 적이 없던 수잔나는 면회를 가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트리스탄은 불가능한 운명을 헛되이 갈망하지 말라며 수잔나를 외면해버린다.

수잔나는 자신을 지탱해온 희망이 사라진 순간, 살아있을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그녀는 자살한다.

트리스탄의 사랑에 우유부단한 태도는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주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겠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트리스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몰입시키는 것은 자기 발견과 구원의 길일 수도 있음을,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러고서야 깨달았다.

시간을 허비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는 사랑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는 맛도 향기도 없는 과일이나 꽃을 추수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울증 환자들이 많은데, 남자의 비율이 증가한다.

특히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애도반응과 관련된 우울증도 드물지 않다.

마음에 한기가 들어 따뜻하게 감싸줄 온기가 그립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고. 실컷 울어 보아도 마음은 좀처럼 정갈해지지 않고, 허공에 떠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꾸준히 읽혀지는 것도, 적극적인 사랑을 실현하려는 건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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