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성춘 '지상의 시간 2'

나는 지금 저녁노을을 보고 있다. 선도산에

막 도착한 저 老子. 빈손이다 서쪽하늘의 물소리다.

더 낮추게, 더 간절해지게 중얼거리는 소리.

물소리에서 꽃향기가 번진다.

老子가 빈손을 저으며 저무는 숲쪽으로 오래오래 걸어갔다.

나도 老子의 손을 잡고 산꿩 우는 숲길을 오래오래 걸어갔다.

텅 비었다.

더 할말이 없다.

김성춘 '지상의 시간 2'

선도산은 고유명사가 아닌 추상명사이다. 그것은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물소리에서 꽃향기가 번지는 선도산은 얼마나 멋진 곳인가. 시인은 선도산에 이르기 위해 지상의 시간을 산다. 老子는 선도산의 길잡이이자 선도산의 주인이며 선도산 자체이기도 하다.

텅 비어 더 할말이 없을 때까지 더 낮추고 더 간절해질 때 비로소 노자의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서쪽하늘의 물소리처럼 빈손일 때 비로소 선도산에 흘러들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전생과 후생 사이에 끼어 있는 지상의 시간, 당신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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