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울산 바로 밑에 대운산이 있고 대운산 중턱으로 올라가다 보면 대원암이라는 암자 즉 아주 잘 생긴 절이 있다.
다보탑처럼 생긴 최신형 탑도 절 마당 한가운데 세웠는데 거기서 열린 탑 봉축기념 음악회에 나와 베이스 바리톤 오현명 선생님이 초대되었다.
말이 절간 앞마당 음악회지, 내가 생각하기엔 소슬한 가을바람에 열리는 음악회 장소로는 최상이었다.
외길을 따라 차를 몰고 올라가면서 나는 "원 세상에 이렇게 하늘끝처럼 높은 곳에서 음악회를 하면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담"하면서 구시렁댔지만 정작 음악회 현장까지 올라갔더니 웬걸 사람들이 벌써 빼곡히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지스님, 그곳 온산군수님, 천주교 신부님, 아마 신교 목사님도 그 자리에 계셨을 것 같다.
하여간 그쪽 지방에서 오셔야 할 분은 다와 계셨다
이건 딴 소리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번잡스럽긴 해도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
여러 종교끼리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아, 지금 이순간에도 저 중동쪽이나 심지어는 영국 같은데서도 '빌어먹을 놈들,썩을 놈들' 얼마나 종교 때문에 싸움하고 난리를 치느냐 말이다.
유대종교인과 이슬람의 싸움, 징글징글한 신교와 구교의 싸움은 끝을 모르는 채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인간들은 우리 대한민국에 단체로 버스 대절해서 경상남도 대운산 꼭대기 대원암 앞마당까지 와서 불교의 스님과 천주교의 신부님이 어떻게 나란히 사이좋게 싱글벙글거리시며 먼곳에서 오신 손님을 나란히 맞이하고 계신지 똑바로 보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 종교인들은 타 종교인과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
이건 대한민국만의 관습법이다.
요지부동의 법률이다.
현재 수도 서울이 대한민국의 관습법에 의한 절대적인 수도이듯이 종교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건 우리네 최상의 아름다운 관습법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장소에서 클래식의 오현명 교수님과 대중음악의 조영남이 노래를 선물해야 했는데 순서책자에는 조영남이 먼저 노래하고 이어서 오 교수님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 날더러 오 교수님 다음에 노래를 하기로 결정봤다고 통보해 오는 것이었다.
오 교수님은 나의 서울 음대시절 직계 담당교수님이셨다.
오 교수님은 현역으로 뛰고 계신 셈인데 글쎄 연세가 무려 80세를 넘으셨다.
82세 할아버지가 멀쩡하게 노래를 부르신다는 얘기다.
이건 도무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참고로 지금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나 조영남도 꽉찬 60이다.
만만치 않다.
나는 선생님께 달려가 선생님께서 노래 부르는 순서를 바꿨다는 걸 눈치채고 물었다.
"선생님 왜 제가 나중에 노랠 해야 합니까." 참고로 무대에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큰 영예다.
관습법에 의거해서 말이다.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선생님은 이북출신이시다.
"야, 사람들이 네 노래를 더 좋아할 거 아니가,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노래하면 누가 좋아하겠니. 걱정말고 네가 마지막을 장식하라우."
대학생 시절에 선생님께선 나에 대한 기대가 여간 크지 않으셨다.
자화자찬 같아서 쑥스럽지만 하여튼 나 역시 정통성악가로 성공하리라는 기대를 얼마간은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했으면 나는 꽤 괜찮은 오페라가수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만 중도에서 소위'딴따라'음악으로 빠졌고 내 주위의 모든 친구들이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하며 나의 담당 오 교수님께 책임을 물을 때도 나의 스승님은 눈 딱 감고 "영남아, 아무 걱정말고 너하고 싶은 대로 하라우"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는 선생님을 내 차로 울산공항까지 모셔다 드렸다.
암자에서부터 시내공항까지 내려오는 동안 스승과 제자는 모처럼 말 그대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 스스로가 멋지게 살아왔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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