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기만 살린다면 이국땅에서의 설움을 모두 떨칠 수 있으련만…."
코리안드림을 가지고 머나먼 대구땅을 밟아 꿈을 그려가던 30대 필리핀 출신 근로자 폴(32)과 플로렌스(30) 부부는 요즘 눈물이 마를새 없다.
지난달 20일 이 외국인 부부에게 사랑의 결실인 예쁜 남자아기 레이한이 태어났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아기에게 선천성 심장병과 선천성거대결장증(Congenital Megacolon)이라는 병이 있다는 진단결과가 나왔기 때문.
특히 대구에 온 지 각각 5, 6년씩 된 이들 부부는 산업연수생 자격이 만료된 지 이미 2년이 넘는 불법체류자로 지내면서 모아둔 돈도 다 떨어져 아기의 수술비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결장이란 맹장과 직장을 잇는 대장의 한 부분으로 '선천성거대결장증'은 출생시부터 결장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질환이다.
또 이 병은 장운동이 어려워져 대변이 몸안에 쌓이면서 다른 장기로도 병이 옮겨질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입원해 있는 동산의료원의 손수민 담당의는 "방사선검사를 통해 아기에게 결장에 이상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1차적으로 대장을 옆으로 빼내는 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이상증세가 있는 대장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을 더 해야 한다"며 "또 이 수술을 끝내도 선천성심장병 수술을 다시 해야 하기에 아기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병원 측은 현재 1차 수술비만 1천여만원 넘게 들었으며, 추가 수술을 고려하면 수천만원의 돈이 더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출생의 기쁨도 맛보기 전에 폴 부부는 이국땅에서의 설움을 2세에게도 안겨준 것 같은 비애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폴씨는 "몇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사업주들이 약간의 돈만 주고 내쫓을 때마다 많이 울었다"며 "그래도 좋은 한국 친구들 덕분에 대구에서 정을 붙이고 살려고 했는데 이 같은 지경에 처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지었다.
현재 부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이곳에는 자신들과 같은 꿈을 안고 대구에 왔던 동남아 근로자 수십명이 있다.
처음에는 모두들 귀여운 아기의 출산을 축하했다가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도와줄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
지금 폴 부부에게는 얼마전 외국인근로자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돈 300여만원이 전재산. 아기를 보기 위해 병원에 올 때마다 이 돈을 품속에 꼭 쥔 채 찾았다가 너무나 비싼 수술비 얘기만 나오면 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엄마 플로렌스씨.
그녀는 "3년 전 아기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여비가 없어 고향땅 마닐라에 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역만리에서 아기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울먹였다.
25일 오후 동산의료원 신생아실을 찾은 폴씨 부부는 인큐베이터에 누워 온몸에 각종 의료장치를 부착한 채 뒤척이는 아기 레이한을 유리창가에서 바라보며 "아가야, 힘~내"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소중하다지요. 불법체류자 신세인 우리 부부에게 저 아기는 마치 희망의 불빛같아요. 아기방에 햇살을 비춰주고 싶어요." 말을 마친 부부는 의료진에게 필리핀 고유어인 타갈로그어로 연신 '마라밍 살라맛(고맙습니다)'이라고 인사를 한 후 병원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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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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