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영화보기-기억의 고통

누구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아내가 살해 당한 날의 충격으로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된다.

온 몸에 사건의 단서를 문신으로 남기는 모습은 우리가 가진 기억의 끔찍함과 절박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기억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개봉 예정인 '나비 효과'는 지워버리고 싶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진 주인공이 잘못된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또 '아이, 인사이드'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남은 기억의 파편을 가지고 운명을 바꾸는 절박함을 그리고 있다.

'거미숲'의 주인공은 기억의 모호함 때문에 고통 받는다.

하루를 지나면 기억이 원점으로 돌아오는 '첫 키스만 50번째'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5일 개봉하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알츠하이머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기억과 함께 사랑의 추억도 점차 사라지는 슬픈 러브스토리다.

고통스런 기억도 이 영화처럼 지워버리는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일요일 'MBC 스페셜'은 대구지하철 참사 등 대형사고를 겪은 생존자들의 고통과 후유증을 방송했다.

활달하던 23세 아가씨는 그날 이후 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부모들과의 대화도 끊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은 그날 이후 기억력도 떨어지고, 용기도 나지 않아 휴학까지 했다.

사고의 충격이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알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직은 임상단계지만, 고통스런 기억이 저장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약효가 있으며, 앞으로 기억을 통째 지워버리는 신비의 알약도 개발된다고 한다.

프랑스 문예평론가 앙드레 모루아는 "망각 없이 행복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너무 아프면 사랑의 추억도 고통스런 일이다.

그래서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노래했을까.

모든 일을 기억하면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하물며 죽음의 경계를 넘은 대형사고의 고통은 오죽할까.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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