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과서의 '편향성 시비'가 진정 국면을 맞고 있다.
금성출판사 간행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친북좌파적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는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주장이 급속히 가라앉고 있다.
근현대사 전문가들, 역사교사들은 물론 평범한 학부모들과 학생들까지도 역사교육의 의미가 과거에 대해 일방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드러내 더 나은 미래를 가꿔가는 데 있다는 관점을 폭 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연구하며 가르치는 필자로서는 진지한 학문적 토론의 대상인 역사교육의 문제를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말로 '편향성 시비'에 대한 관전평을 대신하고 싶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 시비가 말 그대로 '편향성 시비'로 끝나버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 제도가 앉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활용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국사 교과서는 1974년 국정 체제로 바뀐 이래 현재까지 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단일한 역사해석만을 독선적으로 강요하는 국가주의적 역사교육은 권력을 미화하고 냉전·분단체제를 고수하려는 지배이데올로기의 확산에 기여해 왔다.
국정 체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학계의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정 교과서 체제는 타협적으로 재편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고교 과정의 한국사 과목은 1학년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필수)인 '국사'와 2, 3학년 심화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로 구분되고, 필수과목인 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으로 하는 이원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검정 제도는 획일적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국정 교과서 체제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소개하여 과거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는 제도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검정 교과서는 검정 과정 자체가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교과서의 단원·장·절·항목의 제목은 '준거안'에 정해져 있으며, 항목의 서술도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방향이 제시돼 있다.
검정에서 탈락하면 교과서 제작비의 회수가 불가능하지만, 일단 검정만 통과하면 채택률이 아무리 저조해도 제작비를 지원받는 사정 때문에 출판사는 '준거안'의 준수를 집필자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교육부 준거에 충실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감정도 엄격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검정 과정을 거치고 나면 집필자 개개인의 주관적 견해와 개성이 반영된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6종의 검정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가 6종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정도로 현행의 검정 제도는 엄격한 틀에 묶여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 제도가 얼마나 후진적인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과 검정의 이원체제, 사실상 국정과 다름없는 검정 교과서. 우리에게는 내 주장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도 인정하고 과거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포용하는 다원주의적인 역사인식이 반영된 교과서들을 통해 과거에 대한 인식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하는 역사교육의 과제가 여전히 현재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문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교과서 편찬을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검인정 제도조차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만 채택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 선진국은 다양한 관점의 역사 교과서가 '시장'을 통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국정과 검정이라는 이원체제로 여전히 과거에 대한 기억의 생산과 유통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려는 국가의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다.
또한 전근대와 근현대가 필수와 선택으로 양분되어 사실상 근현대사 교육을 방치하고 있는 한국사 교육 모델을 개선하여 근현대사 교육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전현수(경북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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