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휴거 소동

1992년 10월 28일 밤 전국 166개의 교회에 흰옷을 차려입은 신도 8천200여 명이 집결했다. 교회 안은 기도하는 목소리, 그 속에 섞여 나오는 울음소리, 신도들의 절규로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다. 한 순간 나방 한 마리가 불빛 속을 헤집고 날아올랐다.

"나방이 휴거된다"는 소리에 사람들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환호했고, 두 팔을 들어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최자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흰옷부대'는 허탈한 심정에 가족들 손에 이끌려 돌아갔다.

집단적 종교 광기의 한 단면인 '휴거(携擧)'사태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 결과는 휴거설로 신도를 끌어모았던 이장림 목사가 9월 24일 경찰에 구속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세상의 종말을 맞아 부와 명예의 덧없음을 설파하며 신도들로부터 전 재산을 헌납받았던 이 목사는 그 돈으로 자신의 배를 채웠다. 경찰이 발견한 그의 채권 지급일은 자신이 주장한 휴거일이 훨씬 지난 1993년 5월. 이 목사는 경찰 구속 후 직접 휴거설을 철회하고 사과성명까지 냈지만 이미 휴거설에 빠져버린 신도들의 마음은 돌려지지 않았다.

1년 뒤 출소 후 첫 설교에서 이 목사가 털어놨듯 "시한부 종말론은 영혼에 대한 마약과 같은 것"이었다. 불안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종말론,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 싹이 자라고 있지 않을까?

▲1636년 미국서 하버드대 개교 ▲1886년 미국 '자유의 여신상' 제막 ▲1976년 안동다목적댐 준공 ▲1999년 고문경관 이근안, 검찰에 자수 ▲2000년 강원도 정선 카지노 개장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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