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란 유령이…" 요즈음 우리 정계에도 한 유령이 떠돌고 있으니 바로 '좌파(左派)정권'이란 것이다.
10월 28일 한나라당의 두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4대 악법을 제출한 날은 열린우리당이 좌파정권을 선언한 날" "간첩 출신의 민주화 유공자 인정, 국보법 폐지 등을 볼 때 현 정부를 좌익정권이라 부르는 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몰아붙인 데 대해 여당인 열린우리당 당직자들과 이해찬 국무총리가 강력히 반발하고 여기에 이 총리의 한나라당 비난발언이 겹쳐 국회는 파행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좌파정권이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그걸 부인하고 있으니 그러면 한쪽이 진짜 유령을 보았다는 말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이념논쟁에서 적어도 한 가지 바람직스러운 대목은 바로 '좌파-우파'라는 용어 그 자체다.
한국의 정치세력 또는 사회세력이 갈등 대립을 벌이고 있는 양상을 가리켜 흔히 보혁(保革)대결, 즉 보수세력과 혁신(진보)세력의 대결로 명명하는데 이는 부정확하다기보다 진실에 어긋난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서 보수세력이라 함은 과거 산업화에 기여했거나 산업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간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참으로 잘못된 용어법이다.
우리의 산업화 세력이 나라를 발전시켜 온 과정을 보면 보수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우 혁신적인 방법을 사용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5천년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팔을 걷어붙인 것 자체가 보수주의자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후 그들은 하나 하나 타파해 나갔다.
타파된 예를 들어보자. 초가집, 매판자본론, 사농공상 의식, 고속도로 낭비론, 중화학공업 부당론 등등…. 이 숱한 장벽들을 깨뜨리고 전진해 간 산업화 세력은 그야말로 혁명세력이자 '앞을 향해(進)' '발걸음(步)'한 진보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진보주의자들'로 불리는 세력들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칼 포퍼(1902~94)는 청년세대의 좌경화현상에 대해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은 것은 가슴이 뜨겁지 못해서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면 머리가 둔해서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은 젊은 시절 자신의 사상적 방황을 회고하면서 "내가 지금도 마르크스주의자였다면 아마 나는 북한의 어느 시골에서 음악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나는 한국의 좌파가 꼭 우파로 변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좌파로 있더라도 생각과 언동은 세월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우리의 이른바 혁신(진보)세력에는 '진보'가 없다.
즉 '앞을 향해 발걸음한' 자취가 전혀 없다.
조국의 북반부를 지배하면서 인민의 삶을 고달프게 한 김일성 부자의 60년 학정에 대해 그 애정을 변하지 않고 견지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지독한 수구세력들이다.
해방 후 좌파세력의 끈질긴 방해를 뚫고 자유민주국가를 세운 건국세력과 나라 경제를 반석 위에 올린 산업화세력에 대해 줄기차게 흠집내기를 한다는 방법론의 면에서도 그들은 보수주의자들임에 틀림없다.
'앞을 향해 발걸음 하기'는커녕 모든 언동, 모든 정책의 초점을 오히려 과거로 돌려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진보 아닌 '퇴보(退步)주의자들'이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번 이념논쟁에서 한나라당이 지고 열린우리당이 이겼으면 한다.
그래서 한국에는 진짜 좌파정권이 없고 다만 한나라당이 헛것을 보았다고 자인하게 된다면 좋겠다.
그러자면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좌파정권의 정책으로 오해되고 있는 정책을 당장 거두어들이고 또 좌파적인 것으로 들릴 수 있는 일체의 언동을 이 시간 이후부터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럴 경우 누가 그대들을 굳이 좌파정권이라고 지칭할 것인가.
이번 논쟁에서 바람직스럽게 생각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지금의 정권담당세력이 좌파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 그것을 우리가 알게 됐다는 점이다.
좌파는 나쁜 것이다-라는 것을 알았다면 집권세력이여, 그대들은 주저없이 그 앎을 행동화하라.최재욱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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