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횟집에 가면 자연산 대신 아예 양식장에서 자란 생선회를 주문하고 싶고, 갈빗집에 가면 괜히 믿을 수 있는 한우 어쩌고 하기 싫어 수입 쇠고기를 달라고 하고 싶다. 김장철을 앞두고 시장에 나온 고추가 국산 고추로 변신한 수입품이 아닌지, 메주도 쑤어야 하는데 자칫 국산으로 둔갑한 수입 콩 때문에 고래(古來)의 간장 맛, 된장 맛 버릴까도 걱정하게 되는 요즘이다.
옛 건축을 하는 나에게는 현장에서도 이런 걱정거리가 따라다닌다. 지금까지는 조상들의 숨은 슬기를 찾아내어 이를 잘 가꾸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길이 남겨줄 궁리를 했었는데 문화재 보수공사 사업장에까지 수입목이 판치는 현실 앞에서는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이거 국산 육송(陸松) 맞아요?' 변별력이 낮은 문화재위원들은 산림학을 새롭게 연구해야 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한 때는 수입목(輸入木)에 의한 흰개미 피해로 그 대책을 수립하느라 전전긍긍했었는데, 지금은 한술 더 떠서 보수공사 후 1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중요부재들의 비틀림 현상 때문에 관계자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오래된 지정문화재 목조건축은 날이 갈수록 보수공사가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기단의 돌이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석이고, 지붕을 떠받치고 서있는 기둥과 대들보, 용마루를 받치고 있는 동자주와 대공, 자연스런 곡선을 연출하는 연목(서까래)과 추녀, 기둥 간살을 잡아주는 평방 창방과 도리, 우물마루 청판을 얽어맨 장귀틀과 동귀틀의 투박한 치목수법, 온돌방과 대청사이의 사분합 들장지와 세살문짝의 멋,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들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이것은 여기에 사용된 재료가 대부분 그 지역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산출재료를 사용했음이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육송이기 때문이다.
지정문화재를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관계 전문가들은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보수공사 현장에서도 수입 바람은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목구조 조립식 가구(架構)가 기본 골격이고 목구조는 오랜 세월의 풍화로 보존을 위한 작업이 불가피하다. 산자 이상만 해체하고 지붕의 기와만 바꿀 때도 있지만 때로는 완전 해체 보수공사가 불가피한 때도 있다. 어렵사리 몇 차례씩 현장을 둘러보고 관계 전문가들이 보수공사 지침을 내리고 나면 관청에서는 이를 실행하게 되는데, 이 때 대체되는 부재를 보고 '이거 국산 육송(陸松) 맞아요?' 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문화재 보수공사 현장에서마저도 수입바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일본 사람들의 자연재해에 대한 국민의식은 우리나라 사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실제 자기들 산에 그 많은 나무들 그냥 두고 가구제작에 대부분 수입목을 사용한다. 하지만 문화재 보수공사에 사용하는 재료만큼은 예외다. 창건 당시에 사용한 재료의 산출지역, 수령, 재질, 수형 등 고르고 골라 자기나라 것을 사용한다. 수입 콩 땜에 한국인 고래의 간장 고추장 맛까지 걱정해야하는 현실 앞에 문화재 보수공사 현장에서 국산 육송 걱정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일까?
수입목 탓에 보수한지 채 1년도 안되어 중요부재가 뒤틀리고 문짝과 문선재료가 서로 맞지 않아 문이 닫히지 않고, 신(新) 부재가 수축하여 헐거워진 봉창이 언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데 우리 고유의 전통 건축이 대책 없이 몰락하지는 않을까 안타깝다.
최영식(문화재위원. 영남이공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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