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은행나무 거리서 詩를 읊다

잦아진 실바람만큼이나 가을길을 나서는 길손의 상념도 깊어집니다.

샛노란 잎사귀들이 수북히 쌓인 거리는 아쉬움과 함께 그리움도 덩달아 쌓여갑니다.

은행나무들의 찬란한 한해살이는 노란 잎사귀에 얹혀 갈무리되듯 우수수 쏟아집니다.

어느 해 못지 않게 부산했던 2004년 갑신년도 이제 끝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2004년은 어떠하셨는지요. 뒤안길의 묵직한 삶은 아니었는지요. 하염없이 뒤돌아보게 하는 한해는 아니었는지요. 은행잎은 길바닥에 뒹굴어도 그 색이 바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시름많은 한해도 그렇게 또렷한 색으로 남지 않을까요.

대구 도심에 걸어볼 만한 은행나무길이 몇군데 있다고 합니다.

한적한 오후를 골라 연인이든 친구든, 더불어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을의 심연에 묻혀 가슴 속에 희망을 담아보는 것도 썩 좋을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길에 어울리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시 한구절 읊조리면서 은행나무길을 천천히 걸어보십시오.

사무치는 그리움을 조용히 품은 채/간밤의 찬 서리에 탄식을 맡기고는/대범하게 비장한 풍경을 펼치며/노오란 은행잎 나비인양 날은다//

머얼리 별들과는 밤새도록 이야기하다/지쳐버린 몸일랑 찬바람에 맡기더니/찬란한 가을의 그림을 그리면서/떨리는 마음에로 닿아가는 은행잎//

싱싱하던 삶의 봄은 꿈으로 엮었었다/씨 뿌린 타향 땅에 자라난 꿈의 나무/거창하던 젊음의 여름 태양을 노래했다/진한 녹색 무성하게 지평선에 솟았더니/숙연하고 거룩한 작별가를 부르면/날아서 날아서 하늘 끝에 전해갈듯/부서져 한 줌의 흙이 되기 전까지도/기여히 찬란한 시 쓰고야 마는/은행잎은 져 간다/한 잎, 두 잎 또 한 잎//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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